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 - 문신(1973∼ )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공단 지대를 경유해 온 시내버스 천장에서 눈시울빛 전등이 켜지는 저녁이다
손바닥마다 어스름으로 물든 사람들의 고개가 비스듬해지는 저녁이다
다시,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저녁에 듣는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착하게 살기에는 너무 피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문득 하나씩의 빈 정류장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내버스 뒤쪽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을 저녁이라고 부른들 죄가 될 리 없는 저녁이다
(하략)
세상이 아프다. 전쟁이 터지고 난민은 떠돈다.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난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죽인다. 세상을 배워가고 있는 작은 아이는 저녁 뉴스 시간마다 물어본다. “요즘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이 죽어?” 요즘이 아니라 한참 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평범한 세상이 어울리는데 평범한 우리들이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은 극단으로 흐른다. 아주 화려하거나, 아주 자극적이거나, 아주 잔인하다.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작은 내 인생을 성실하게 꾸려나가고 싶은 사람들은 힘들고 두렵다. 세상이 아파서 사람도 아프다.
전염병이 약해졌어도 우리는 아프다. 단체로, 군중이 되어 앓고 있다. 그 장면이 이 시 속에 들어 있다. 착하게 살아서 아프고, 성실하게 살아서 아프다. 내가 맡은 바 일을 다 하고, 남이 떠맡긴 일까지 군말 없이 다 하고, 세상이 시키는 대로 정신없이 살다 보면 피로해진다. 피로한 사람은 파리해진다. 오늘은 네가 아프고 내일은 내가 아플 것이다.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남 일만은 아닌 것이다.
덜 경쟁하고, 덜 더럽고, 덜 치사하고, 덜 잔인한 지구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아프니까 생각한다. 아프니까 생각해야 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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