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바닥의 가오리 - 손유미
마음이 지구젤리만 해졌을 때 마음 가오리는 찾아옵니다
마음 바닥을 낮게 날아 말랑한 바다를 느끼며
달래듯 어르고
어르듯 만져
살랑살랑
해류를 바꿀 듯
가오리 가오리 하네요
(손유미 시집 ‘탕의 영혼들’)
몸도 마음도 튼튼
생전 아버지께서 정한 우리 집 가훈은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이다. 초등학생 시절 매 학기 초 가정환경조사서에 이 아홉 글자를 적을 때마다 부끄러웠다. 너무 평범하고, 사실 촌스럽지 않은가. 그럴듯한 사자성어를 적어오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훗날 어른이 돼 가훈을 정해야 한다면, 보다 근엄한 명구로 정하리라 마음먹기도 했었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고 보니, 이만한 가훈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삶이 별건가, 이 둘의 강건함만 있다면 못할 일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마음이니, 조금만 부대끼는 일이 생겨도 나는 어릴 적 내가 부끄러워했던 가훈을 떠올린다. 근래에 들어 부쩍 내 마음이 무척이나 쇠약해졌음을 느낀다.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고 짜증이나 화를 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며칠 전 아끼는 후배와 자장면 한 그릇을 나누다가 버럭 화를 냈다. 그만한 일이 아니었기에, 후배만큼이나 나도 놀랐다. 미처 사과하지 못하고 헤어진 밤에 미안함이 깊어져 책상 앞에 앉았다. 대체 나의 문제가 무엇인가 적어보기 시작했다.
몇 되지 않는 핑곗거리 중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이유는 몸의 건강이었다. 마스크를 벗고 생활하는 동안 환절기 건강이 도진 것이며,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 조금만 무리해도 쉽게 지치는 요즘인 것이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새삼 ‘도’라는 보조사의 의미를 깨닫는다. 아버지가 옳았다. 몸과 마음이 다를 리 없지. 건강 또한 그러하다. 그러면서 나는 저 촌스러운 가훈이 대물림되겠구나,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유희경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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