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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김수호-조선가슴시/최영미♣어떤 시

[최영미의 어떤 시] 저녁 식사 - 정해옥(丁海玉 1960~) [조선/ 2023-04-17]

설지선 2023. 4. 17. 11:52

      /일러스트=김성규

       

       

      저녁 식사 - 정해옥(丁海玉 1960~)<

       

       

      교도소로 가야 합니다

      남자에게 통역하고 법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

      백화점에 들려 가다랑어 다타키를 사서

      전철에 뛰어올라 좁은 자리에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오늘 맡은 사람은 생각보다 담담했나

      (…)집에 들어와 바로 쌀을 씻는다

      반성하고 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남자의 말들이 질끔질끔 쌀뜨물을 타고

      흘러 내려간다(…)

      갓 지은 흰쌀밥의 고소한 김을 맡고(…)

      교도소로 가야 합니다

      남자에게 통역한 말 따위는

      차가운 맥주를 목 뒤로 넘기면서

      완벽하게 잊은 것처럼 들이켰다

       

      (손유리 옮김)

       

       

정해옥은 일본의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시인이다.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80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역사를 공부하며 언어 문제로 고민하다 시를 쓰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30년 동안 오사카의 법정에서 한국인 피고인들의 통역사로 일했다.

‘저녁식사’에는 ‘법정 통역인(法廷通譯人)’으로 활동하다 집에 돌아와 밥을 지어 먹는 그의 일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한국과 일본, 두 개의 언어를 이어주는 일을 해온 그 정성, 조국을 잊지 않는 마음이 애틋하다.

“남자에게 통역한 말 따위는 완벽하게 잊은 것처럼”이라고 썼지만, 잊지 않았기에 그의 마음에 남은 앙금을 시로 꺼내 보여준 게 아닌가.[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