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소부(張少府)에게 회답하다 - 왕유(王維 701~761)
늘그막에 조용한 것만 좋아하게 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어졌네.
돌이켜 보면 특별한 방책이 없다 보니
고향 산림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
불어오는 솔바람에 허리띠를 풀고
달빛 비치는 산 위에서 거문고 타네.
그대 곤궁에 달관하는 이치를 묻는가
강어귀 깊숙한 곳 어부 노래 들어보게
(류인 옮김)
이백, 두보와 더불어 당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왕유가 그의 친구인 장 소부(‘소부·少府’는 현령을 보좌하는 벼슬아치)에게 쓴 답시. 달빛 비치는 산 위에서 거문고를 타는 시인은 그다지 곤궁해 보이지 않는다. 왕유는 시만 아니라 그림과 음악에도 능한 예술가였다. 5행과 6행의 빼어난 자연 묘사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마지막 행에 나오는 “어부 노래”는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를 연상시킨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말한 어부를 가리키며 왕유는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고 있다.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왕유는 기회가 되면 관직에도 나가는 ‘반관 반야’의 생활을 했다.
귀촌하여 쓴 또 다른 시에 “험준한 쑹산 아래 숨어 문 잠그고 들어가 세상일 잊으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당 현종이 머물던 뤄양에서 가까운 쑹산(嵩山)에 은거하며 그는 정말 세상을 잊었을까.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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