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 - 박라연
아무리 넓고 넓은 우주라도 더 간절한 쪽부터 마음을 배달해주시려는
참 눈치 빠르신 우체부 아저씨, 만난 적 있습니다
(박라연 시집 ‘아무것도 안 하는 애인’)
우체국에 대하여
집 가까이 편의점이 있을 때 그걸 일컬어 ‘편’세권이라 하더라. 기차나 지하철 역 부근 거주지를 의미하는 ‘역세권(驛勢圈)’을 변형해 만든 신조어리라. 그렇다면, 내가 운영하는 서점은 우세권이라 할 수 있겠다. 우체국이 가깝다는 의미이다.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옆의 옆집이다.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우체국이 제공하는 편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더구나 책은 참 무거운 물건이다. 한 상자만 꾸려도 낑낑대며 옮길 수밖에 없는지라 소중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어디 기능적 이유뿐이겠는가.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곳이 우체국이다. 덕분에 ‘랜드마크’가 돼주는 것이다. 서점 위치를 설명하기 어려울 때에는, “혜화동 우체국 가까이 있습니다.” 한마디면 된다. 주고받는 마음이 쌓여 만드는 운치 또한 제법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온기, 쓸쓸하기도 한 그리움, 그런 기운이 흘러와 우리 서점의 고즈넉함을 만들어준다고 나는 믿는다. 낙엽이나 눈송이가 떨어지는 계절이 되면 나는 괜히 그 앞을 어정거린다. 우체국에는, 사람의 속을 밝혀주는 은은한 빛이 있다.
며칠 전부터 우체국이 수리하느라 문을 닫고 있다. 불편하게 됐지만,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것이 어디인가. 그저 다행이라 여기는 중이다. 덩그러니 혼자 남아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있는 빨간 우체통을 보다가 문득, 저 안에 편지를 넣어본 적이 언제였더라 싶어졌다. 우체국이 다시 문을 열면, 관제엽서를 몇 장 사서, 서점에 비치해둬야겠다. 마침 연말연시, 안부와 소식을 주고받는 시절. 서점에 앉은 사람들이 엽서 쓰는 모양을 상상하자니, 기분이 좋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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