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가 없는 세상 - 권정생(1937~2007)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치함)
한국어로 쓰여진 가장 뛰어난 반전 반핵(反戰反核) 평화의 시. 이 세상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청춘을 보낼 것인가. 애국을 외치고 총을 쏠 그 시간에 무지개를 사랑하고 연인들과 소곤거리며 더 많은 것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다.
태평양 전쟁 통에 일본에서 태어나 제대로 먹지도 배우지도 못하고 객지를 떠돌며 병고에 시달리다 사랑은커녕 우정도 얻기 힘든 청춘을 보낸 작가의 가슴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 눈물겹다. 권정생 선생은 사람과 글이 일치한 드문 작가였고, 세상에 귀하디 귀한 진짜 애국자였다. 5평짜리 흙집에 살며 당신이 받은 문학상 상금을 우편으로 돌려보내고, 사후에 발생할 인세를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쓰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난 우리 시대의 스승. “그는 탐욕과 죽음의 공포로 가득한 이 세상의 전복을 꿈꿨다”는 이대근의 추모 글이 귓가를 맴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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