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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김수호-조선가슴시/최영미♣어떤 시

[최영미의 어떤 시] 뺄셈 - 김광규(金光圭·1941∼) [조선/ 2021-11-01]

설지선 2021. 11. 1. 08:56

[최영미의 어떤 시] 뺄셈 - 김광규(金光圭·1941∼) [조선/ 2021-11-01]







    뺄셈 - 김광규(金光圭·1941∼)



    덧셈은 끝났다

    밥과 잠을 줄이고

    뺄셈을 시작해야 한다

    남은 것이라곤

    때묻은 문패와 해어진 옷가지

    이것이 나의 모든 재산일까 

    돋보기 안경을 코에 걸치고

    아직도 옛날 서류를 뒤적거리고

    낡은 사진을 들추어보는 것은

    품위 없는 짓

    찾았다가 잃어버리고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 또한

    부질없는 일

    이제는 정물처럼 창가에 앉아

    바깥의 저녁을 바라보면서

    뺄셈을 한다

    혹시 모자라지 않을까

    그래도 무엇인가 남을까



김광규 선생의 시선집에 집에 관한 시들이 많다. 서울로 이사한 직후에 읽어 그런지 ‘뺄셈’이나 ‘고향’ 같은 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절창은 4·19 세대의 내면 풍경을 노래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이고 개인적으로 그의 ‘밤눈’을 무척 좋아하지만, 밤늦게 새집의 책상에 앉은 피곤한 몸은 ‘뺄셈’에 끌린다. 노년에 낙오하지 않으려면 덧셈보다 뺄셈을 잘해야 한다.

시 속에 “집”이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문패” “재산” 등 세속적인 단어와 앞뒤 맥락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더하고 빼는 게 새집 장만과 관련된 계산이라는 것을. 잔금은 어이어이 치르는데 복비와 세금은? 이사비가 모자라지 않을까. 내가 계산을 잘못하지 않았나. 생애 최초로 서울에 집 한칸 마련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들떠 수없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숫자들을 더하고 뺐다. 시인의 계산이 맞아야 살만한 사회 아닌가.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