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안부 ― 윤진화(1974∼ ) [동아/ 2021-02-27]
안부 ― 윤진화(1974∼ )
잘 지냈나요?
나는 아직도 봄이면서 무럭무럭 늙고 있습니다.
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세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읊조립니다.
당신이 보낸 편지 속에 가득한 혁명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당신에게 답장을 합니다.
모쪼록 건강하세요.
나도 당신처럼 시를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마세요.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
이제 곧 봄이다. 마흔 번째 봄, 쉰 번째 봄. 사람에게는 수없이 다양한 봄이 있다. 더 많은 봄을 알고 있다는 말은 좀 더 늙었다는 말과 같다. 가장 어린 계절을 늙어가면서 맞이하는 기분이란 상당히 묘하다. 찬란한 여름을 기대하기보다는 잘 늙고 잘 버리고 싶다. 생명 가운데서 죽음을 떠올려 본 사람, 시인과 같은 생각을 해 본 사람에게 윤진화 시인의 ‘안부’는 낯설지 않다. 내 마음을 마치 나인 듯 알고 있는 시가 낯설 리 없다. 세상에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같은 생각을 한 같은 편이 있다는 사실은 사무친 위안이 된다.
본격적인 봄이 되어 더 부산스럽기 전에 안부를 전하자. 좋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나 자신에게 인사를 나누자. 사람답게 살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 쓴 시는 안부 인사로서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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