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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살인자가 강 건너에서는 애국자다”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조선/ 2020.12.12]

설지선 2020. 12. 12. 11:06

[아무튼, 주말] “이 땅의 살인자가 강 건너에서는 애국자다”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조선/ 2020.12.12]

 

 


/일러스트=김영석

코로나 사태로 강연 시간이 줄어들면서 읽고 집필할 시간이 생겼다. 그러나 시력과 건강 상태의 변화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논어’와 파스칼의 ‘팡세’를 들추곤 한다. 한두 페이지만 읽어도 생각할 과제가 생기며 깨달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에는 ‘팡세’의 ‘정의란 어떤 것인가’는 편에서 “그는 강 저편에 살고 있다”는 구절을 보았다. 파스칼은 “내가 강 이편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너는 강 저편이어서 죽이면 애국자가 된다”고 설명한다. 냉전시대에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사회주의 강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도 서울과 평양 사이의 강을 같은 동포이면서 건너지 못한다. 대통령도 야당 지도자일 때는 불의라고 성토하던 사건을 지금은 정의라고 선언한다. 강 저쪽에서 이편으로 자리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직장도 그렇고 가족들 간에도 건너기 힘든 강을 만들어 불행과 고통을 만든다.

 

무엇이 그 원인인가. 편견, 고정관념, 절대가치의 신봉자들 때문이다. 사회생활에서는 이기적 욕망이 그런 강을 만든다. 정권욕에 빠져 애국심을 상실한 정치인들은 정의를 강의 양편에서 판단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더 큰 원인이 있다. 정의를 완성시키는 사랑의 질서를 깨닫지 못하거나 배제한 결과다. 정의는 개인이 아닌 사회적 관념이기 때문에 평등을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사회주의자들이 많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 기능으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정의는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다. 인간적 삶이 주체가 되고 정의는 그 방법 가치의 하나인 것이다.

 

모든 종교와 도덕은 ‘인간애라는 나무에서만 자유와 평등의 열매가 함께 공존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자유가 없는 평등은 인간적 삶이 못 되며 평등을 배제한 자유는 불행을 만든다. 자유와 평등은 공존하면서 조화를 유지해야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길은 휴머니즘의 나무를 키우는 데 있다.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의 사랑이 큰아들의 정의로운 주장을 받아들이고, 작은아들의 자유의 실책을 되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애의 정신을 상실하거나 배제한 사회에서는 자유와 평등 모두를 잃는다. 독일의 나치 정권이 보여주었고, 소련의 공산주의가 남겨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안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시대와 사회를 따라 생겼다가 사라지곤 했으나 휴머니즘이 영원한 것은 인간애의 존엄스러운 최고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에 뒤따르는 필수적 교훈이 있다면 이기주의적 분열과 투쟁은 언제 어디서나 건설적 관념도 못 되나, 대화와 협력은 민주주의와 역사 건설의 필수조건이라는 정신이다. 정치나 경제의 역사적 건설을 위한 지상 교훈이다. 그 뜻이 ‘논어’나 ‘팡세’의 근본정신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