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어떤 사람 ― 신동집(1924∼2003) [동아/ 2020-07-25]
어떤 사람 ― 신동집(1924∼2003)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별을 돌아보고
늦은 밤의 창문을 나는 닫는다.
어디선가 지구의 저쪽 켠에서
말 없이 문을 여는 사람이 있다.
차갑고 뜨거운 그의 얼굴은
그러나 너그러이 나를 대한다.
나즉히 나는 묵례를 보낸다.
혹시는 나의 잠을 지켜 줄 사람인가
지향없이 나의 밤을 헤매일 사람인가
그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창문을 열면
또 한번 나의 눈은 대하게 된다.
어디선가 지구의 저쪽 켠에서
말없이 문을 닫는 그의 모습을.
나즉히 나는 묵례를 보낸다.
그의 잠을 이번은 내가 지킬 차롄가.
그의 밤을 지향없이 내가 헤맬 차롄가.
차겁고 뜨거운 어진 사람은
언제나 이렇게 나와 만난다,
언제나 이렇게 나와 헤어진다.
나쁜 시절은 특히나 젊은이의 마음을 잔인하게 조각낸다. 1950년대 전후(戰後) 역시 그러했다. 시인은 시로 말할 수밖에 없어서, 젊은 시인들은 절망으로 점철된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그래서 나온 시집이 그 유명한 ‘한국전후문제시집’(1961년)이다. 신동집 시인도 여기에 모인 30인 중의 하나였다. 청년 시인은 이후 노인이 될 때까지 50년간 30여 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특히나 전후에 출발한 시인에게는 공통적으로 ‘존재’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쟁 때문에 인간 존재 자체가 퍽 위태로워졌고 시인들은 결여된 그 의미를 찾아야 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존재 탐색에서 시작된 신동집 시인은 ‘행인의 시학’으로 나아가게 된다. “시인은 언제나 존재의 고향을 향해 걸어가는 박명의 귀환자이며 머물 길 없는 행인이다”는 것이 시인의 견해였다.
존재, 행인, 여행자. 이런 단어들을 곁에 써 놓고 ‘어떤 사람’을 읽으면 여운이 더욱 그윽해진다. 나는 이 지구별에 찾아온 여행자. 어린 왕자처럼 잠시 왔다 곧 떠날 방랑자이다. 그리고 오늘을 마감하는 나의 저편에서는 또 다른 여행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너도 있구나. 저이도 나와 같구나. 이런 교감이 말없이 이루어지니 마음이 쓸쓸하면서 동시에 벅차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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