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어머니와 순애 ― 박태일(1954∼) [동아/ 2019-11-23]
어머니와 순애 ― 박태일(1954∼)
어머니 눈가를 비비시더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비시더니
어린 순애 떠나는 버스 밑에서도
잘 가라 손 저어 말씀하시고
눈 붉혀 조심해라 이어시더니
사람 많은 출차대 차마 마음 누르지 못해
내려보고 올려보시더니 어머니
털옷에 묻는 겨울바람도 어머니 비비시더니
마산 댓거리 바다 정류장
뒷걸음질 버스도 부르르 떨더니
버스 안에서 눈을 비비던 순애
어디로 떠난다는 것인가 울산 방어진 어느 구들 낮은 주소일까
설묻은 화장기에 아침을 속삭이는 입김
어머니 눈 비비며 돌아서시더니
딸그락그락 설거지 소리로 돌아서
어머니 그렇게 늙으시더니
고향집 골짝에 봄까지 남아
밤새 장독간을 서성이던
눈바람 바람.
이 시는 박태일 시인의 ‘풀나라’라는 시집에 실려 있다. 묻혀 있던 우리 고유의 말을 맛깔스럽게 살리고, 묻혀 있던 우리나라 풀잎 이름과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시집이었다. 그 시집에서 다른 시를 제치고 ‘순애와 엄마’ 이야기를 들고 온 것은 내 이름이 민애여서만은 아니다. 언니 이름이 신애여서도 아니고, 친구 이름이 근애여서도 아니다. 이유는 지금이 추워서다. 추워질 때엔 누구든 뜨끈한 것이 필요하다. 어묵 국물은 손을, 우동 국물은 배 속을 따뜻하게 하지만 영혼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사람이고 말이다. 엄마라는 사람, 엄마라는 말은 우리가 평생 뜯어먹고 사는 영혼의 양식이다.
순애가 어디로 왜 떠나는지 알 수 없지만 저 풍경이 낯설지는 않다. 가고 싶어 가는 것이 아니고 보내고 싶어 보내는 것은 아닐 테다. 어머니를 놓고 가는 딸의 마음은 메어 오고, 딸을 보내는 엄마 마음은 미어진다. 안타까운 손짓으로 말을 대신하고, 눈을 비비는 행동으로 마음을 대신하는 장면이 그 심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순애의 이름 대신 당신의 이름을 넣어보자. 세상 모든 순애에게는 걱정하는 어머니가 계신다. 이것이야말로 순애가 잘살아야 할 이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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