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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언어폭력은 말로 하는 채찍질 - 정도언 서울대 명예교수 [동아/ 2019-09-25]

설지선 2019. 9. 25. 11:22

[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언어폭력은 말로 하는 채찍질 -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동아/ 2019-09-25]



▲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말하기 전에 자신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이 거짓은 아닌가?

이 말을 지금 꼭 해야 하는가?

되도록 품위 있게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짓말을 안 하기 위해서입니다. 폭력적인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인류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거짓말은 생존을 위해 부여된 능력입니다.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효율을 높이려면 속임수를 쓰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이 지나치거나 되풀이돼서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킬 정도가 되면 사회 전체의 신뢰체계가 무너집니다.

거짓말은 자신을 가려서 안락하게 감싸는 옷과 같지만 진실의 비바람 속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진실은 활짝 열린 모습이고 거짓말은 굽어 있어서,

열려 있어 거침이 없는 진실과 달리 거짓말은 진실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계속 굽은 길을 갑니다.

결국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다가 막다른 골목에 도달합니다.

크게 보면 거짓말은 두 가지 형태입니다.

자기를 지켜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보존형 거짓말이 있고

상대를 해쳐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학형 거짓말이 있습니다.

자기보존형 거짓말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이루어집니다.

첫째,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간에 자신이 아끼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다.

둘째, 자신에게 가해지는 위협에서 벗어나거나 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가학형 거짓말의 목표는 상대를 교묘하게 속여서 통제하고 모욕하기 위함인데

자기보존형과 달리 폭력적입니다.

자기보존형은 피하기 위함이고,

가학형은 공격하고 제압하기 위함입니다.


거짓말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이유는

거짓말로 대화의 공간에서 주도권을 잡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을 것이라는 환상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언어를 가지고 노는 지적 즐거움이 있습니다.

언어의 상징성은 즐거움을 증폭시킵니다. 이러한 현상은 거짓말에도 적용됩니다.

태어나서 세 살 무렵이 되면 대놓고 거짓말을 할 능력이 생깁니다.

여섯 살이 되면 하루에 두 번 이상 거짓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현실적인 필요성도 있지만 상대가 자신이 만들어낸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 즐거워서입니다. 성공했다는 안도감도 보상으로 작용합니다.

어른이 되면 신성한 동기나 신념-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할수록 거짓말은 점점 힘을 얻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알고서도 거짓말을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하는 거짓말도 늘어납니다.


거짓말의 기법은 단순합니다.

있는 사실을 빼거나 왜곡하거나 없는 사실을 더하면 됩니다. 단, 표정 변화가 없을수록 좋습니다.

거짓말에는 정치적인 기능도 있습니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질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추종자를 늘리고 그들의 감탄, 인정, 관심을 끌어내려 합니다.

거짓말로 상대를 공격해 승점을 챙길 수도 있습니다.

거짓말로 인해 자신이 겪은 모멸감을 거짓말로 되돌려주기도 합니다.

거짓말이 성공하면 평소 느끼는 열등감과 왜소함을 보상해주는 ‘약효’도 발생합니다.

정치의 세계에서 거짓말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통제, 모욕, 제압입니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의 성격은 자기애, 자신을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는 성향으로 넘칩니다.

자기에 대한 사랑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나 진솔한 대화의 가치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애를 위해서는 거짓말도 가리지 않습니다.

주변에 응원단이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대화의 공간은 미리 기획되고 위축되고 정직한 대화는 불가능해집니다.

흥미롭게도 거짓말의 틈새로 살짝 보이는 그 사람의 마음속 풍경은 진실입니다.

무협 영화에 나오는 장풍과 말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기를 통해 전달되며, 잘못 휘두르면 폭력이 됩니다.

대화가 이해의 통로가 되기보다는 비난, 간섭, 침투, 압력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진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폭력성은 이미 일상입니다.

인터넷은 자기 정화기능이 없이 폭력적인 말들을 끊임없이 쏟아냅니다.

대중 매체가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정치권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고 익명성이 보장되니 편안합니다.

직접성과 즉시성이 특질이기도 합니다.

직접성은 중간 여과 과정이 없다는 뜻이고, 즉시성은 충분한 생각 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말입니다.

정치권이 내뱉는 험한 말들은 이름을 알릴수록 저명해지는, 정치적인 이득이 됩니다.

언어폭력이 마음에만 상처를 주지는 않습니다.

말의 상징성이 불러오는 부정적인 감정은 몸도 해칩니다. 심하면 병에도 걸립니다.

언어폭력은 ‘말로 하는 채찍질’입니다.

채찍은 공기를 가르는 소리만으로도 공포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제 정치인들의 험한 말들은 그들이 급할 때 늘 거론하는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등극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알 수 있나?”

안 보인다고 없지 않습니다!

안 보이면 대처할 수 없습니다. 더 위험합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