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벌레·쓰레기·개돼지 사는 나라? - 이한수 문화부 차장 [조선/ 2019.08.09]
▲ 이한수 문화부 차장 |
서로 비난하며 대립 갈등… 이 나라의 앞날이 두렵다
이 나라엔 벌레가 많이 산다. 모습은 사람인데 '××충(蟲)'이라 부른다. 수컷은 한남충, 암컷은 페미충이다. 새끼 키우면 맘충과 애비충으로 탈바꿈한다. 어린 것은 급식충, 나이 먹으면 틀딱충이다. 행태에 따라서도 변신한다. 도덕심 높으면 도덕충, 말 많으면 설명충, 배려 중시하면 배려충, 정치적 올바름 강조하면 PC충, 유머 없는 진지충도 있다. 도덕한남충, 진지틀딱충, PC맘충 같은 혼종 벌레도 가능하다.
쓰레기도 넘쳐난다. 겉모습은 사람인데 '×레기'라 부른다. 기자는 기레기, 변호사는 변레기, 의원(議員)은 의레기 식이다. 직업 이름 한 글자에 쓰레기의 두 글자를 더했다. '아베 일본'의 무역 보복 이후 정부의 무능과 무대책을 비판하면 '왜레기'라고 변태시킨다. 국민 전체를 지칭해 개돼지라는 별칭을 쓰기도 한다. 어느 영화에 나온 대사를 한 공무원이 언급해 퍼진 말이다.
벌레·쓰레기·개돼지는 주로 어둑어둑한 인터넷 공간에 서식한다. 환한 낮의 세계에선 온전했던 사람조차 온라인으로 숨어들어 사냥감을 찾는다. 자신만 빼고 상대를 벌레 등속으로 변신시킨다. 나라 밖 외국인 눈에는 이게 참 이상한 모양이다. 어느 외국인이 인터넷에 이렇게 썼다. "한국인들은 서로 존중하지 않습니다. 제가 몇 년 동안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를 즐겨 봤는데 가장 이상한 것은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쓰레기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자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국 인터넷은 항상 반말로 천박하게 시작합니다. 항상 조롱과 갈등이 이어집니다. 천박하게 말을 하니까 자신에 대한 저주도 쉽게 받아들입니다. 깊은 대화는 없습니다."(김창규 '눈먼 자들의 질주'에서 재인용)
의견이 다르면 욕설을 퍼붓는다.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면서 일본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하면 토착 왜구라고 비난한다. 반대로 중·러·북 도발에 무신경한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토착 오랑캐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 나라엔 왜구 아니면 오랑캐가 살게 됐으니 전투 한번 치르기 전에 나라는 이미 점령당한 셈이다.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노회찬 의원은 생전에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한국과 일본도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다. 이 나라 '벌레'들은 상대 '벌레'를 잡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외계인과 손잡고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 태세다.
정작 밖에서는 이 나라를 본받고 싶은 나라, 멋진 문화를 가진 매력적인 나라로 여기고 있다. 이 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잇달아 성취하고 '3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 이상)'에 세계 일곱 번째로 가입했다. 아시아·아프리카 개발도상국 인재들이 발전 모델로 삼아 배우러 온다. 세계 많은 젊은이가 인종과 종교를 넘어 이 나라 아이돌 그룹 노래를 따라 하고 춤을 추면서 선망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 나라 헌법은 공화국(共和國)으로 적고 있으나 이러다간 공멸국(共滅國)으로 갈 우려가 있다. 벌레·쓰레기·개돼지는 서로 싸우더라도 위정자는 이들을 조정하여 함께 화합[共和]하도록 해야 할 터인데, 나라 권력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며 오래오래 자리를 지키려 한다. 법무장관 하러 푸른 기와집을 나온 전 민정수석은 의견 다른 이들을 이적(利敵)이고 매국(賣國)이라 했으니 '사람은 스스로를 모욕한 후에 남이 모욕하고, 나라는 스스로 친 후에 남이 쳐들어온다'는 맹자의 말이 두렵게 다가온다.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가. 누가 이어갈 나라인가. 정말 두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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