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소 1 - 권정생(1937∼2007) [동아/ 2019-08-03]
소 1 - 권정생(1937∼2007)
보릿짚 깔고
보릿짚 덮고
보리처럼 잠을 잔다.
눈 꼭 감고 귀 오그리고
코로 숨 쉬고
엄마 꿈 꾼다.
아버지 꿈 꾼다.
커다란 몸뚱이,
굵다란 네 다리.
―아버지, 내 어깨가 이만치 튼튼해요.
가슴 쫙 펴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는 보릿짚 속에서 잠이 깨면
눈에 눈물이 쪼르르 흐른다.
권정생은 동화 ‘강아지똥’을 쓴 작가다. 한때 아이였던 사람, 혹은 아이를 키웠던 사람들은 강아지똥을 읽어봤을 수 있다. 에계, 강아지똥이라니. 제목만큼이나 하찮은 스토리 아닌가. 이렇게 의심하실 수도 있지만 이 책은 단순한 동화책이 아니다. 새삼 강아지똥보다도 못한 나를 발견했을 때, 그 발견이 너무 당황스러워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할 때, 이 책을 펼쳐보시라. 어떤 책은 사람을 부축해 일으키기도 한다.
권정생은 가난한 사람. 아주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평생 가난했던 사람이다. 또 권정생은 아픈 사람. 오래 아프게 살아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봤던 사람이다. 그는 작은 교회 문간방을 얻어 종지기로 살며 작품을 지었다. 인세는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떠났다. 그런 사람이 지은 시를 소개한다. 강아지똥을 다 읽어드릴 수 없어서 강아지 닮은 순한 시를 읽어드린다. 그리움을 여물처럼 씹어 삼키는 소는 꼭 권정생을 닮았다. 실제로 권정생은 가난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소 닮은 권정생이 세상 하나이지 않다. 시인은 죽고 없지만 저 소 모양의 마음은 살아 있다. 아버지 꿈만 꾸고 아버지와 말 못하는 사람. 어머니 꿈만 꾸고 어머니와 못 만나는 사람. 아버지 어머니 있어도 꿈에서나 만나야 하는 사람. 다 소같이 웅크리고 잘 것이다. 슬픈 숨을 들이켜며 오늘은 얼마나 많은 소가 꿈을 청할까.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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