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별의 아픔 ― 남궁벽(1894∼1921) [동아/ 2019-01-26]
별의 아픔 ― 남궁벽(1894∼1921)
임이시여, 나의 임이시여, 당신은
어린 아이가 뒹굴을 때에
감응적으로 깜짝 놀라신 일이 없으십니까.
임이시여, 나의 임이시여, 당신은
세상 사람들이 지상의 꽃을 비틀어 꺾을 때에
천상의 별이 아파한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이 시는 우리가 잃어버린 한 천재의 작품이다. 남궁벽은 남궁 성씨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 시인이 참 드물고 적었던 1920년대를 누구보다 반짝거리며 맞이했던 문인이다. 1920년에 ‘폐허’라는 이름의 잡지가 세상에 나왔는데 남궁벽은 창간 멤버였다. 멤버들 중에서도 남궁벽은 남달랐다. 폐허는 잡지 제호처럼 조금 퇴폐적이고 허무한 작품이 실리곤 했다. 하지만 남궁벽의 작품은 보다시피 낭만적이고 따뜻했던 것이다.
남궁벽은 문학을 사랑했고 시대도 그가 문학을 더 사랑하길 원했지만 안타깝게도 요절하고 말았다. 겨우 20여 편의 시를 남기고 사라진 시인의 죽음을 가장 슬퍼한 사람은 친구이자 소설가 염상섭이었다. 염상섭은 1921년 남궁벽이 사망하자마자 애도의 글을 남겼고, 이후로도 두고두고 친구의 일을 꺼내 기록에 남겼다. 증언에 의하면 남궁벽은 술도 못 마시면서 문인 친구들과 열심히 어울렸다. 말이 많지 않아 미소로 답했고, 항시 몸가짐이 깨끗했다고 한다.
그의 단정함을 생각하며 시를 읽는다. 아주 오래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인간의 인간다운 마음과, 그 마음을 확대해서 우주로 펼치는 상상력에서 나온다. 남궁벽은 사람이 짐승이 아님을 믿는다. 게다가 모든 존재가 홀로 있지 않다는 것도 믿고 있다.
염상섭은 남궁벽에 대해 “생전에 불우하고 사후에도 낙막하다”고 했다. 하지만 시인은 읽힐 때 비로소 불우하지 않다. 오늘만큼은 이 아름다운 시를 읽는 모든 사람 곁에서 시인이 쓸쓸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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