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 문재인 대통령, 고유함이 사라진다 [동아/ 2017-08-01]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만들겠다고 밝힌 문 대통령그러나 5대 인사원칙 깨지고 반성하는 사람 없어… 공론화위원회도 눈 가리고 아웅
문재인式 품격은 사라지고 점점 과거와 닮아가고 있어… 혁명이 실패하는 건 자신을 혁명하지 못했기 때문
▲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
나라를 관리하는 중심적인 관점이 대강 첫 층에 해당되면 후진국, 둘째 층에 해당되면 중진국, 셋째 층에 해당되면 선진국이다. 삶의 핵심이 어떤 층에 근거를 두는가가 얼마나 큰 통제력을 갖는가를 결정한다. 이렇게 되면, 공자가 그의 제자 자공이 정치의 요체를 물을 때 왜 ‘신뢰’를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들었는지 알 수 있다. 신뢰는 셋째 층에 있는 것으로서 가장 중요하고 강하다. 그래서 공자는 말한다. “신뢰가 없으면 나라다운 나라가 되기 어렵다(無信不立·무신불립).”
불행하게도 온 나라에 ‘이것이 나라냐’라는 자조가 팽배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을 말하면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경험했던 나라보다는 더 나은 나라여야 한다는 의미로 읽는다.
우리는 후진국도 경험했고 중진국도 경험 중이다. 건국도 경험했고 산업화도 경험했고 민주화도 경험했다. 첫째 층도 경험했고 둘째 층의 상위 단계를 경험 중이다. 이제 우리가 경험해야 할 나라는 중진국 너머의 나라고, 민주화 다음의 나라다. 그렇다면, 셋째 층에서 작동하는 나라여야만 한다. 즉, 인문적 단계다. 바로 ‘말’과 ‘신뢰’가 작동되는 수준이다. 제도를 넘어 사람의 가치가 실현되는 단계다. 새 세계가 열리는 위치다.
가끔은 실재 세계의 현상을 직접 접촉하는 것보다 구조나 맥락을 읽어야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 구조만 가지고 보자.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이라는 과거를 불러들인 정부다. 박근혜 정부가 박정희를 불러들인 것과 모양이 같다. 나있는 풀을 보면 그 땅이 어떤 땅인지를 알고, 쓰는 사람을 보면 그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 줄을 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기춘을 비서실장으로 쓰는 순간 그 다음에 전개될 형국은 이미 대부분 결정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종석을 비서실장으로 쓰는 순간 그 다음의 많은 것을 이미 암시한다. 문 대통령은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고도 했다. 구시대와의 결별은 구조적으로 잘 안되고 있다. 구시대와의 결별을 박근혜나 이명박과의 결별로만 인식한다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약속했던 5대 인사 원칙도 이미 속절없이 사라졌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을 범한 인사들이 대통령 가까이서 국가 경영의 책임을 맡았다. 구시대에 다 있던 일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시켜 놓고, 노 전 대통령 사후에 반대로 돌아섰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결정했다가 노 전 대통령 사후에는 반대했다. 책임지지 않고 반성도 하지 않는 일, 과거의 관행적 폐단이다. ‘대화’와 ‘소통’을 그렇게 강조하지만,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만 한다. 덩달아 협치도 사라졌다. 원전 폐기를 공론화에 부치면서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었다. 누가 봐도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이런 식의 공론화위원회는 결별하고픈 과거에도 숱하게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이 워낙 커서 거기와만 달라져도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의 격에는 맞지 않는다. 이렇게 하다가 문재인만의 고유함이나 새로움이 사라지고 점점 과거와 닮아가고 있다. 아마 작은 일이 아닐 것이다.
과거와의 결별도 우선 내 과거와의 결별이 앞서야 한다. 적폐 청산도 내 적폐가 우선 청산되어야 한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지키는 모범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자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는 주춧돌이다.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 생각난다. “혁명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혁명하려는 자가 혁명되지 않은 채 혁명하기 때문이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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