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밥상 앞에서 ― 박목월(1916∼1978) [동아/ 2016-11-25]
밥상 앞에서 ― 박목월(1916∼1978)
나는 우리 신규가
젤 예뻐.
아암, 문규도 예쁘지.
밥 많이 먹는 애가
아버진 젤 예뻐.
낼은 아빠 돈 벌어가지고
이만큼 선물을
사갖고 오마.
이만큼 벌린 팔에 한 아름
비가 변한 눈 오는 공간.
무슨 짓으로 돈을 벌까.
그것은 내일에 걱정할 일.
이만큼 벌린 팔에 한 아름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의 하늘.
목월 선생의 시는, 너무나 좋다.
왜 좋은 것일까. 그의 시는 날카롭지 않아서 좋다. 있는 척, 잘난 척하지 않아서 좋다. 시인의 작품들 가운데 ‘크고 부드러운 손’이라는 시가 있는데, 이 제목이 박목월 시인을 표현하기에 딱 적절해 보인다. 크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따뜻하고 두툼한 손. 우리는 이 손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내 아버지의 손이고, 이 시대 가장 아버지다운 아버지들의 손이다. 다시 말해, 시인의 시를 읽으면 아버지의 다정하고 굵은 육성을 들을 수 있다. 그러니 그의 시가 좋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정의 가난한 저녁 밥상 앞에 아버지가 돌아와 함께 앉았다. 강아지같이 옹기종기한 아이들은 없는 반찬에도 밥을 잘 먹어 준다. 그 모양이 고맙고 예뻐 아버지는 내내 바라보고 있다. 소박한 밥상을 벌어온 것이 아버지의 최선인데, 아이들은 선물을 이만큼 사 달라고 어리광을 부린다. 사실 가난한 시인 아버지는 사랑밖에 줄 것이 없다. 그렇지만 “오냐, 사다 주마”라고 약속을 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안고 돌아서는 아버지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신이여, 저는 왜 이리 무능하고도 보잘것없습니까. 이렇게 짠한 모습으로 아버지는 뒤돌아서서 신을 부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면에서 저 아버지는 세상 가장 큰 사람으로 보인다. 이러니 목월 선생의 시가, 또는 저 아버지가 좋지 않을 수 없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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