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려 깊지 못한 종교 지도자들 탄원서 - 유종호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조선/ 140802)
종교 단체 지도자들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선처(善處)'의 대상은 내란 음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들이다. 탄원서가 제출된 것은 항소심 결심 공판 직전의 시점에서다. 선처의 대상이 누구든, 또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공판을 앞둔 시점에 탄원서를 낸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수 신도를 가지고 있는 종단 지도자들의 처사는 재판부에 심리적 압력이 될 것이다. 공판 때마다 법원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여는 해당 정당원의 행위를 응원하는 것과 진배없다.
보도에 따르면 사달의 발생 계기는 정당 관계자와 피고인 가족들의 요청이었다. 염수정 추기경은 가족들이 준비해온 탄원서를 수용하지 않고 직접 작성한 탄원서를 냈다고 한다. 그 밖의 종교 지도자 7명이 낸 탄원서에는 "누가 어떤 죄를 범했든 도움을 요청하면 그 죄를 묻지 않고 기도해 주는 것이 종교인의 자세"라는 대목이 보인다. 옳은 말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문제는 탄원서 제출은 기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도의 연장선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모순을 드러내고 자가당착에 빠졌다.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어리석은 갈등으로 국력을 소진하기보다 서로 간의 이해와 포용이 허용되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는 대목은 통진당원 사건이 어리석은 정치적 갈등의 소산이라는 함의를 담고 있다. 그러니 국력 소모를 야기하지 말고 이해와 포용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선처를 바란다는 것이다.
진정 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통진당원들이 기소될 당시에 그리 말하고 기소 중지를 요청했어야 옳다. 그때는 침묵하고 있다가 항소심 공판을 앞두고 뒷북을 치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통진당 사건이 단순한 '어리석은 갈등'의 소산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법원이 판단할 문제이다. 1심에서는 이미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항소심을 앞두고 예단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하는 것은 순서가 바뀌었다.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사병의 체포 당시 현장의 부모가 통곡했다는 보도에 가슴이 뭉클했다. 어리고 순해 보이는 범행 사병이 불쌍하다고 말하는 중년 여성을 자주 봤다. 대부분 아들을 군에 보낸 엄마들이다. 그러나 군에는 엄격한 군기(軍紀)와 군법(軍法)이 있다. 그것 없이 군은 존립할 수 없다. 입대 사병의 어머니들이 몰려와 구명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한다면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더구나 탄원 대상 당원들은 어리고 순해 보이는 즉행성(卽行性) 인물이 아니다. 종교 지도자들 탄원의 적정성 여부는 자명하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니체는 "신(神)은 죽었다"고 외쳤다. 그것은 예언자의 소리로 들렸다. 그러나 21세기인 오늘 유럽을 제외한 전 세계에는 종교, 그것도 정치적 형태를 취한 근본주의 성향의 종교가 크게 세를 확장하고 있다. 생로병사를 위시한 인간 고통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과 처방을 주기 때문이다.
자살률이 높고 행복지수가 낮은 우리 사회에선 종교에의 의존도가 높아질 공산이 크다. 그만큼 종교 지도자들의 소임도 커지고 책임도 무거워질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의 직업윤리에 대한 충실이 각별히 요청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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