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키오스크 시대 열렸다 / 김기찬 기자 (중앙/111027)
`정치 키오스크(KIOSK)` 시대가 열렸다. 키오스크란 눈길 가는 곳엔 어디에나 있는 간이 판매대로 소비자가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는 곳이다. 정치에 대입하면 선택의 권한이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에게로 넘어갔다는 의미가 된다. 노회한 정치꾼들의 마당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정치마당이 열렸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정치판을 바꿀 수 있는 주문형 정치판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든 직접 기존 정치판에 뛰어들고, 꼭 여의도에 가지 않아도 정치의 판을 뒤흔들 수 있는 정치판이 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정치 키오스크`의 결정판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서울대 안철수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판을 시작했다. 느닷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등장했다. 의외의 인물이 연달아 등장했다.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반응은 뜨거웠다.
여·야라는 기존 틀에 안주하거나 힘 있는 정치 실세에 줄을 대던 사람들 모두 혼란에 휩싸였다. 여당은 정치판의 이방인이던 두 사람을 깎아내리기 바빴다. 어느 선거판에서나 네거티브 전략은 가장 손쉬운 전략이다. 이것저것 생각할 틈이 없던 여당은 이 전략을 썼다. 여기에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까지 전면에 나서 밀었다. 야당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살 길을 찾기 바빴다. 갑자기 뜬 시민단체 수장. 그들과 함께 궤를 같이 한다고 했던 민주당으로선 자신들이 냈던 후보와 경합을 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그리고 졌다. 그가 이겼다. 기존 정치권이 모두 대혼돈, 카오스(CHAOS) 상태다.
역으로 카오스가 키오스크 정치시대의 도래(到來)를 알리고 있다. 선거 때마다 카오스 상태를 정치권의 개편으로 무마했던 시대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정치 키오스크 시대엔 누구나 얘기했던 기본 이념이 정치권에만 들어가면 편리하게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던 시대가 지났다는 말이다. 이젠 주문형 정치를 주문하고 있다. 주문에 부응하지 못하면 퇴출된다는 경고다. "겸허히 국민들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상투적인 논평을 하다가는 "역시 정치권은 화려한 언변으로 합리화하고, 넘기려 든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된다.
바야흐로 정치 키오스크 시대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과 같은 사람을 원한다. 똥지게를 지고, `우라질`을 연발하는 그런 지도자 말이다. 파격적인 듯 하지만 솔선수범하고 서민과 눈높이를 같이 하려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급부상할 것이란 얘기다. 기존에 우리가 알던 세종은 항상 관대하고,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젠 그게 아니다. `그동안 알았던 세종이 진짜 그랬을까`라고 의문을 던진다.
비록 태종이 왕권 강화를 위해 귀족들을 정리했다고 하지만 세종이 태종 때 살아남았던 귀족의 성장과 왕권에 대한 견제에 정말 `허허` 웃으며 정사를 돌봤을까 하는 그런 의심 말이다. 드라마처럼 세종이 백성을 정말 생각했다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백성과 같이 호흡하며 그것에서 힘을 얻고 정사를 펴지 않았을까 여기는 것이다. 마치 잡스가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내몰리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에 집착했던 것 처럼 말이다.
이제 시민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여의도 성곽형 정치`는 통하지 않는 시대다. 이를 허물지 않으면 21세기 한국 정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정치 철새는 여의도 성곽형 시대에나 통하던 말이다. 자신의 계파를 돈독히 하기 위해 줄을 세우다간 당한다는 걸 지난 여러 차례의 선거에서 국민들이 보여줬다. 이미 지난 지방선거 때 서울 양천구청장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줄을 세운 공천은 패배했다. 시민의 뜻보다는 줄 세우기 식으로 이뤄지는 선거는 `여의도 성곽` 정치의 폐단이다. 정치인이 여의도 높은 담벼락 안이 아니라 가판대에 서서 선택을 받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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