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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함재봉]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 (동아/ 111022)

설지선 2011. 10. 24. 10:16
[동아광장/함재봉]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 (동아/ 111022)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민주주의의 일차적인 목적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신성한 권리와 참정권의 보장과 보호다. 이러한 권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모든 민주헌법은 표현, 언론, 종교, 집회 등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절대시한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신성시되고 민주주의가 보호하고자 하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사유재산권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이는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영국과 미국의 정치사를 살펴보면 자명해진다.

자의적으로 세금을 거둬가고 인력을 차출하는 절대왕권에 맞서 봉건영주들이 만들어낸 것이 근대 민주주의의 효시인 마그나카르타였다. 내가 내 영토에서 애써 일해서 거둬들인 수확을 왕이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빼앗아가려면 그 대신 세금을 얼마를 거두어들이고 어디에다 쓰는지 결정하는 과정에 나를 참여시키라는 요구를 반영한 계약서다.

미국의 독립혁명 역시 영국의 조지 3세가 미국 식민지로부터 자의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데서 촉발되었다. 비록 식민지라 하더라도 세금을 거둬갈 거면 그 대신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정치 과정에 나 또는 나의 대표자를 참여시키라는 요구였다. ‘대의권 없이는 납세의무도 없다’라며 영국 정부가 차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에 무력으로 저항한 ‘보스턴 티파티’가 미국 독립혁명의 촉발제 역할을 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영국에서는 이미 마그나카르타 이후 시행되어 오던 원칙을 괜히 거부하는 바람에 미국 식민들을 분개하게 하였고 결국은 독립으로까지 내몰았던 것이다. 영국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불필요한 일이었다.

자유주의,민주주의 사상에 앞서

참정권과 사유재산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만일 전제군주가 영주든 식민이든 부르주아든 그들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굳이 그들의 허가를 받고 세금을 징수할 이유가 없다. 왕이 빼앗아가려는 것이 원래부터 자기 것이 아니고 개인들의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되어야 그것을 가져가는 대신 왕이 이들에게 그 전까지는 자신 고유의 영역이었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양도하는 계약이 성립하는 것이다. 전제군주로부터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보호받고 이 사유재산의 일부를 ‘세금’의 명목으로 양도하는 대가로 받아내는 것이 참정권이다. 바꿔 말해서 민주주의의 발전의 역사는 곧 사유재산권의 발전의 역사인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 역사는 왕권으로부터 끊임없이 영주의, 식민들의, 부르주아의 사유재산권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사유재산이 있었기에 참정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주의는 오히려 민주주의에 앞서는 사상이요 가치다. 민주주의가 없는 자유주의는 가능하고 역사적으로도 존재하였다. 마그나카르타 이후에 영국의 민주주의가 정착되기까지는 7세기가 걸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소한 영주들은 전제군주도 감히 침해하지 못하는 사유재산권을 갖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참정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1932년 독일 총선에서 37.3%를 득표하면서 제1당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민주적으로 얻은 권력을 바탕으로, 그리고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절대권력을 쥐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유대인 등의 소수민족 학살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결국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정책을 취했다. 유대인들의 절대적인 인권과 재산권, 종교자유권 등이 보호되지 않는 나치독일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산업혁명 이후 마르크스와 같은 좌파 사상가들은 ‘무산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와 자본가 계급의 착취에 분노하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의 건설을 꿈꾸기 시작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폴 포트 등은 노동자 계급의 일당독재하에서 사유재산제 철폐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사유재산의 철폐는 곧 개인 권리의 철폐와 개인 존엄성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좌파의 이상주의는 결국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역사상 전무후무한 학살과 대기근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정치체제를 ‘민주주의’로 부르는 것을 고집하였다.

‘자유’빠지면 공산주의 참상 초래

자유주의가 빠진 민주주의를 내세우던 공산주의가 초래한 참상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유럽의 일부 좌익은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하게 된다. 노동자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 간의 협력을 통하여 계급 간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도 결국은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 계급 혁명을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꾼 것이다.

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허상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