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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광화문 현판, 이참에 글씨도 바꾸자 / 김태익 (조선/110104)

설지선 2011. 1. 4. 17:26

[태평로] 광화문 현판, 이참에 글씨도 바꾸자

 

김태익 논설위원 (조선/110104)


문화재청이 복원한 지 석 달 만에 갈라졌던 광화문 현판을 바꾸기로 했다. 옳은 방향이다. 아무리 감쪽같이 이으면 된다 하지만, 한 번 갈라졌던 걸 아무 일 없었던 듯 포장만 다시 해 넘겨주는 건 역시 후손들한테도 낯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나무만 바꾸면 광화문 현판 문제는 다 해결되는 걸까.

광화문 현판이 갈라졌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한 서예인은 "그래도 글씨만 괜찮다면…"이라고 했다. 현판은 글씨가 우선인데 이미 글씨가 영 아닌 터에 나무가 좀 갈라졌기로서니 무슨 큰 문제냐는 야유(揶揄)였다. 광화문 현판 글씨는 1865년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당시 공사 책임자였던 훈련대장 임태영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궁궐 정문의 현판은 그 궁궐의 얼굴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복원된 광화문 현판 글씨에서 조선왕실 법궁(法宮)의 위엄과 품격과 기세와 멋을 찾기 힘들다고들 한다.

더 큰 문제는 현판의 글씨가 엄밀히 말해 임태영의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글씨는 일본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는 1900년대 초 광화문 사진 속에 나오는 임태영의 글씨를 컴퓨터로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워낙 멀리서 찍은 탓에 아무리 복원해도 글씨 원형이 70% 정도밖에 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광화문 현판 글씨에서 사람들이 아우라를 느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임태영의 글씨 흔적과 컴퓨터가 합작한 가공품에 불과한 탓도 있을 것이다.
태평로] 광화문 현판, 이참에 글씨도 바꾸자


전문가들이 내놓는 대안은 여러 가지다. 우선 우뚝한 명필들이 남긴 글씨 중 '光' '化' '門' 세 글자를 모으는(集字) 방법이 있다. 조선 중엽 한석봉의 글씨는 근엄하고 강건해서 조선 중·후기 사대문과 궁궐 현판 글씨가 그의 서풍(書風)을 따랐다. 그의 대자(大字)천자문에 나오는 글씨로 광화문 현판을 만들면 조선시대 현판 글씨의 원류를 복원한다는 뜻이 있다. 또 올해로 탄생 1300주년을 맞는 신라시대 명필 김생의 힘 있고 근육질 넘치는 글씨를 모으거나,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모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복원이 단순한 과거의 재현에 그쳐선 안 된다며 광화문 현판에 우리 시대가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글씨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사람의 최고 글씨를 가려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면 그 자체로 현대 서예와 문화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을 다시 걸자는 여론도 여전히 많다. 1968년의 광화문 복원은 일제에 의해 경복궁 동쪽으로 쫓겨갔다가 6·25 때 불탔던 광화문을 본래 자리에 되살린다는 의미가 있었다. 지금이야 시멘트 복원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당시로선 없는 나라 형편 속에 나름대로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국가적 사업이었다. 그때 박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은 이런 시대적 사연을 안고 4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며 대한민국 중흥의 목격자로 우리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먼 훗날 역사는 2011년 이 땅에 살았던 이들이 우여곡절 끝에 광화문 현판을 다시 만들어 건 사실을 기록할 것이다. 이번 광화문 복원은 전란으로 인한 피해 복구도 아니고, 왕실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낸 중건사업도 아니다. 용(龍) 그림의 마지막에 눈(睛)을 그려넣는 심정으로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광화문 현판을 남겨주는 데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