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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비관하세요, 맘이 편해져요/ 마광수 연세대 교수 (조선/090801)

설지선 2009. 8. 1. 09:39

[마광수의 馬Q정전] 삶을 비관하세요, 맘이 편해져요

마광수 연세대 교수 (조선/ 090801 )

 

인생을 살아나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낙관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비관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 두 방법 가운데 비관적인 인생관 쪽을 택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의아해할 것이다. 요즘은 누구나 긍정적인 사고, 또는 낙관적 희망 같은 것을 강조하며 소위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에 의한 운명 개척법 같은 것이 많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인생이란 원래부터 부조리한 것이고 생로병사의 고통으로 점철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긍정적인 인생관을 만들어봤댔자 결국 더 큰 절망과 환멸을 가져다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는 실존주의자들의 인생관이나 석가의 인생관을 나의 인생관으로 채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나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자주 든다. 즉, "배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가 한 대 얻어맞는 것이 훨씬 덜 아프다"고 말이다.

권투 시합을 보면 복부를 겨냥하고 때리는 경우가 많다. 나 같으면 살짝 한 대 얻어맞기만 해도 금방 고꾸라져버릴 것 같은데 권투 선수들은 수없이 얻어맞고도 끄떡없다. 그들이 긴 연습기간을 통해서 맞는 훈련이 되었고 또 미리부터 얻어맞을 것을 예상하여 배에 잔뜩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배에다 전혀 힘을 주지 않고 있는 상태는 곧 낙관적인 인생관을 견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반대로 배에다가 잔뜩 힘을 주고 있는 상태는 비관적인 인생관을 견지하고 살아가는 것과 흡사하다.

인생은 결코 노력에 정비례하거나 우리의 계산대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 좋다는 보약 다 먹어보고 소위 무공해 식품으로만 이루어진 식단으로 식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어느날 갑자기 자동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인플레가 너무 극심하여 화장지로 밑을 닦는 것보다 지폐로 밑을 닦는 것이 더 싸게 먹힐 정도였다고 한다. 어떤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열심히 저금을 했고 동생은 열심히 맥주만 마셨다.

그런데 인플레 때문에 열심히 저금한 사람의 돈은 휴짓조각이 돼버렸고 열심히 맥주만 마신 사람은 나중에 그 빈병들을 팔고 보니까 저금한 사람이 모은 돈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돈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인생은 불안한 것이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고, 예측 불허의 난관이나 행운들이 중첩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비유를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놀기만 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미래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희망을 억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요즘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각종 우울증이나 자폐증 등은 모두 다 '급격한 절망'에서 온다.

과도한 기대는 반드시 과도한 실망과 낙담을 불러일으키고 '시큰둥한 기대'는 오히려 의외의 좋은 결말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비관적 인생관이 훨씬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석가는 인간의 모든 고통은 욕망에서 온다고 가르쳤는데, 만약에 욕망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만 있다면 열반의 세계가 열린다고 했다. 예수도 '마음의 가난한 자'가 복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욕망을 완전히 없애기란 우리 같은 범인(凡人)으로서는 불가능한 노릇이다. 그러므로 욕망을 점점 줄여나가는 편이 아주 없애려고 애쓰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인간의 행복은 다음과 같은 등식으로 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성취/욕망

사람들은 분모인 '욕망'을 줄여나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분자인 '성취'를 늘려나가려고만 애쓴다. 하지만 분수(分數) 전체의 값으로 볼 때, 분모를 줄여나가는 것이나 분자를 늘려나가는 것이나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분모를 줄여나가도록 애써 보라고 권하고 싶다.

즉, 비관적 인생관을 가지고 별 희망을 품지 않고 살아간다면, 오히려 의외의 세속적 행복이 따라와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