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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책장사와 문학인 / 예외석 (한국문학세상 2009 가을호)

설지선 2009. 7. 3. 20:08

책장사와 문학인 / 예외석 (한국문학세상 2009 가을호)


“아무개 선생님, 왜 그런데서 등단을 했어요?”

문학 활동 한다고 여러 단체에 가입해서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가끔씩 듣는 이야기다.

“어디로 등단하셨어요?”

“대학 전공은 뭘 하셨어요?”

글을 쓰는 사람들끼리도 궁금한 게 참 많은 모양이다. 글을 쓰는데도 학력과  데뷔를 어느 곳으로 했는지가 중요한 모양이었다. 흔히 글을 쓰는 사람은 작품으로 말을 한다고 표현한다. 문학인들은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잘난 간판으로 타인의 기를 죽이거나 은근히 우월감을 과시하려 드는 사람이 있다.    

문학단체도 사람이 모여 활동하는 곳이기에 이런저런 다양한 부류가 있게 마련이다. 그 중에는 하고집이(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도 있고 취미로 자유롭게 활동하는 분들도 있다. 문제는 이 하고집이들이 너무 설쳐대는 바람에 순수하게 활동하는 문인들이 종종 상처받는 경우가 있다.

요즘 갑자기 문화예술계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각종 크고 작은 단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아마도 큰 단체에서 조직운영 방법을 좀 배워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려는 야심가들이 늘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문화예술 활동하는 분들이 전문적으로 하든 취미생활로 하든 늘어난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난립하다보면 그 틈새에서 교묘한 상술로 선량한 문학인들에게 금전적 피해와 함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장사치도 설치게 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알만한 중량급 문예지 몇 군데를 제외하면 대부분 등단을 미끼로 금품을 요구하는 곳이 많았었다. 요즘은 쉽게 등단할 수 있는 잡지나 단체들이 많이 생겨 금품을 요구하는 곳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그 방법을 교묘히 바꾸어 1차로 당선 통보를 한 뒤 전제조건으로 문예지를 150권에서부터 50권까지 구매할 것을 요구하는 곳이 여전히 많은 현실이다.

많은 문인들이 문단에 데뷔할 때의 설렘과 여러 지인들에게 소개할 목적으로 본인이 자발적인 구매를 하는 것은 흐뭇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당선을 전제로 은근히 묵시적인 강요를 하는 행위는 엄연히 등단장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치졸함을 지적하고 거부하면 오히려 그들이 화를 낸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릴 하느냐? 우리는 그런 저급한 책장사가 아니다. 문단에 데뷔하는 사람이 그런 정도도 투자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우리만 그런 게 아니고 웬만한 데서는 다 이렇게 하고 있다.”

이쯤 되면 타협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머쓱해지고 만다. 문학 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의례히 그런 것이 관행인 줄 알고 순순히 받아들이고 만다. 더구나 그렇게 등단한 선배문인들 조차도 자신의 치부를 합리화시키려고 그런 행위들을 정당화시키고 만다.

“원래 그런 거야. 처음에 돈이 좀 들긴 들어”

이거야말로 옛날로 치면 돈 주고 벼슬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처음에 그런 과정을 거쳐 등단을 하고 말았다. 책을 100권이나 구매해서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축하한다는 인사도 들었다. 그야말로 ‘어리버리’상태에서 바보문인으로 출발한 것이다. 한참 후에야 문학단체 여러 곳에서 활동하며 그런 일들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 줄 깨닫게 되었다.

몇 년 동안 빵빵한 신춘문예나 중량급 문예지를 통해 당당하게 등단한 선배 문인들로부터 눈치도 많이 받았었다. 문단에서 분류하는 문예지 등급도 A, B급에서 F급까지 다양하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칭 A, B급이라고 자부하는 문예지에서는 하급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문인들의 작품은 아예 지면에 실어주지도 않는 현실이다. 나도 그런 과정을 겪고 몇 년 작심하고 노력한 결과 겨우 문인들 세계에서 인정해주는 곳에서 다시 재 등단을 하게 되었다.

갈수록 태산이다. 유명문예지로 등단을 하게 되면 작품을 실어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문단에도 기성 정치판처럼 인맥관계가 있어야 활동이 자유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배문인들을 통해 그런 과정을 많이 깨우치게 되었다.

문단에는 지금도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실력은 대부분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판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결국 두루두루 인사(?)하고 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다 들여다봐야 하고 평소에도 자주 접촉을 가져 인맥관계를 쌓아놓아야 남보다 진출이 빠르다는 것이다.

문학단체에도 크고 작은 불화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원인의 대부분은 감투자리를 놓고 서로 다툼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그것도 권력이랍시고 잡으려고 기를 쓰는 것을 보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물론 하고집이(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리더를 하면 조직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처럼 한번 회장이다 뭐다 감투를 쓰면 그 자리에 꿀이라도 발렸는지 5년이고 10년이고 쭈욱 계속 하려고 든다. 그리고 한 단체에 만족하지 않고 이 단체 저 단체 기웃거리며 몇 군데에 걸쳐 리더를 하려고 든다. 체력이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칭찬이 앞서다가 어쩐지 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 실력들이 다 틀리게 마련이다. 100명의 실력을 테스트 해 보면 1등에서 100등까지 나누어진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A, B급 문예지를 통해 등단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도 있지만 하급 문예지를 통해 겨우 입문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중량급의 문인들이 체급이 낮은 문인들을 무시하고 짓밟는 풍토가 있다는 것이다. 적당히 자극을 주고 격려해주면 더 노력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싹이 자라지도 못한 채 주저앉아 버리거나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문학 활동은 이제 더 이상 특정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민중의 문학으로 거듭나야지 옛날처럼 사대부들이나 한량들이 즐기는 것으로 착각하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게 된다. 중량급 문인들은 경량급의 문인들에게 설움을 주지 말고 좀 더 따뜻하게 격려해주는 풍토를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게 어디 있는 문예지죠? 그런 것도 있어요?”

“그분이 누구죠?”

지방에서는 알만한 분들인데 서울만 가면 그렇게 취급받는다.

지방에서는 ‘아무개 선생님, 또는 ’교수님’으로 부르는 분들도 서울만 가면 “아무개 씨”로 호칭이 격하되어 버린다. 등단을 미끼로 책장사를 하는 부류도 문제지만 보수적인 문화 권력은 더 큰 문제다.            

현실과 타협을 단호하게 거부하고도 문단에서 과연 발을 붙일 수 있을까?

돈 없이도 문학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세간에 널리 알려진 문예지 몇 군데도 요즘은 신인등단을 시키면서 공연히 입맛을 쩝쩝 다시는 곳이 있다. 자기들은 절대 그런 곳이 아니라고는 하는데 눈치를 주면서 은근히 무언의 협박을 하는 것이다.

신춘문예나 고료를 주면서 등단을 시키는 곳 보다는 돈을 갖다 바치며 책을 사줘야 등단이 되는 문예지가 더 많으니 중량급 문인들에게 무시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 공부를 더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을 것이다.

돈도 되지 않고, 밥도 되지 않는 문학의 길이 참으로 험난하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도 못 부치듯 돈 없으면 작품 발표할 곳도 드물다. 옛날 선비들처럼 골방으로 들어가야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