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사-박성서씨의 (영화 '박쥐'에 남인수·이난영 노래가 흐르는 사연)
일세를 풍미했던 이난영과 남인수의 노래들이 반세기를 뛰어넘어 영화‘박쥐’에 등장했다 영화 '박쥐'에 남인수·이난영 노래가 흐르는 사연 이념의 희생양 된 가요사 불행 담겨 박찬욱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남인수·이난영 붐 일으키고 싶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는 1930~50년대를 대표하는 이난영과 남인수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이난영의 '고향' '선창에 울러 왔다'와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다. 고색창연한 듯 삶의 애절함이 짙게 밴 노래들은 영화 전편에 걸친 클래식과 불협화음을 이루는 듯하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장치다. 이 노래에 대한 박찬욱의 변(辯)이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 상현의 세계에는 바흐의 선율이 사용됐습니다. 여주인공 태주가 속한 지옥 같은 일상을 그릴 때 남인수·이난영 노래가 사용됩니다. 두 세계의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을 콘셉트로 잡았지요." 결국 이 노래들은 박 감독이 꺼내든 비장의 카드다. 노래의 선곡(選曲)도 박 감독이 직접 했다. "고교 때부터 남인수 팬이었습니다. 클래식, 재즈, 록을 포함해 음반으로 녹음된 목소리 중 최고죠. 이난영 노래는 이후에 알게 되었지만 처음 듣는 순간 매료됐죠." 감독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하필 권태로움을 묘사하는 부분에 사용된 것도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노래들은 후반부에 다시 등장해 화면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코드로 사용된다. 노래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이 노래들에 대한 감수는 필자가 맡았다. 이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월북작가들이 만든 노래가 포함되어 있어 한동안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고 그래서 이후 변칙적으로 개사·개작된 채 발표된 노래들이라는 점이다. 이난영의 '고향'은 1941년 만들어졌다. 조명암 작사, 김해송(이난영의 남편) 작곡으로 영화에 사용된 노래는 1960년에 재취입한 것이다. 원 작사·작곡가가 모두 월북작가여서 음반사는 변칙적으로 유광주에게 개사시키고 이난영의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의 이름으로 작곡자 표기를 했다.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는 1954년에 발표됐으며 '선창에 울러 왔다'는 1938년에 박영호 작사, 김해송 작곡으로 박향림의 노래로 발표됐다. 이 또한 월북작가의 곡이어서 박남포(반야월의 예명) 개사, 이봉룡 작곡으로 표기해 이난영의 목소리로 발표됐다.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된 우리 가요사의 불행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노래들인 셈이다. 전 남편의 곡이었지만 이름을 바꿔 재 취입해야 했던 시기에 이난영과 남인수는 부부였다. 이들이 부부 사이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대중들 앞에 등장했던 무대가 1959년 부산MBC 개국 특집 공개방송으로, 이들의 육성이 테이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당대 남녀 톱스타들의 이 세기적 로맨스는 우리나라 질곡의 시대를 관통한, 사랑을 뛰어넘은 사랑이었다. 박 감독 역시 둘 간의 극적인 사랑은 욕심 낼 만한 소재라고 생각했지만 이들의 노래를 대신할 수 있는 배우가 없다는 판단에 욕심을 접었다. 이난영·남인수의 세기적 로맨스는 얼마 전 드라마작가 이선희씨에 의해 '방송 80주년 특집 25부작 드라마'로 기획, 진행되다가 이들과 얽힌 주변 인물들의 압력 그리고 당시 쇼를 재현할 제작비가 만만치 않아 현재 보류된 상태다. 박찬욱 감독은 "이들의 노래를 한 10곡쯤 OST 음반에 수록해 남인수·이난영 붐을 일으키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저작권 해결 문제 등 현실적 난관에 부딪혀 의도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초음파의 소리까지 감지한다는 지구상 유일한 동물 '박쥐'.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남인수·이난영 노래 속에 흐르는 아픈 대한민국 과거의 소리를 얼마만큼 감지해낼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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