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 김상미 한밤중에 일어나 바다를 향해 달음질치던 절박한 발길을 끊고 날마다 세상이 요구하던 절대 교양을 끊고 쓸쓸하고도 쓸쓸한 장난감 네게 쓰던 분홍색 편지를 끊고 눈뜰 때마다 하루하루 증발하는 향긋한 생의 온기를 끊고 아득해지고 초라해지는 물거품 같은 나를 끊고 (김상미 시집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헌 다이어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연말이다. 오가며 듣게 되는 캐럴과 이곳저곳에서 반짝이는 장신구들 덕분에 새삼스러워졌다. 얼마 전 뵈었던 한 선생님은 “세월 가는 속도를 이제는 포기했어.” 하셨다. 초탈해버린 듯한 그의 표정이 자주 떠오른다. 나도 저와 같은 표정을 짓게 되겠지, 싶기 때문이다. 서점 문을 닫은 늦은 시각. 노트를 하나 발견했다. 저것이 무얼까. 어리둥절해 하다가 곧장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