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엄마가 아이에게 - 진은영(1970∼ ) 진흙 반죽처럼 부드러워지고 싶다 무엇이든 되고 싶다 흰 항아리가 되어 작은 꽃들과 함께 네 책상 위에 놓이고 싶다 네 어린 시절의 큰 글씨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알맞게 줄어드는 글씨를 보고 싶다 토끼의 두 귀처럼 때때로 부드럽게 접힐 줄 아는 네 마음을 보고 싶다 베여 나간 나무 밑동의 향기에 인사하듯 길게 구부러지는 너의 훌쩍 자란 등뼈를 만져보고 싶다 (하략) 2022년을 진은영의 새 시집이 나온 해라고 기억하고 싶었다. 시집 제목은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이고 이건 무려 10년 만의 신간이다. 거기 실린 서른아홉째 작품을 여기 소개한다. 마흔두 개의 작품 중에서 단 한 편만, 그것도 일부만 수록해서 시인을 사랑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