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月明) - 박제천(1945∼) 한 그루 나무의 수백 가지에 매달린 수만의 나뭇잎들이 모두 나무를 떠나간다. 수만의 나뭇잎들이 떠나가는 그 길을 나도 한 줄기 바람으로 따라 나선다. 때에 절은 살의 무게 허욕에 부풀은 마음의 무게로 뒤처져서 허둥거린다. 앞장서던 나뭇잎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쩌다 웅덩이에 처박힌 나뭇잎 하나 달을 싣고 있다. 에라 어차피 놓친 길 잡초더미도 기웃거리고 슬그머니 웅덩이도 흔들어 놀 밖에 죽음 또한 별것인가 서로 가는 길을 모를 밖에 매년 입추가 지나면 바람의 온도가 달라진다. 처서까지 지나면 바람의 냄새도 달라진다. 사람도 동물이라서 이런 변화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끈적임은 선선함으로 변했고, 이제 곧 새 계절이 올 것이다. 시를 읽기에 가을만큼 좋은 계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