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벽시계가 떠난 자리 ― 박현수(1966∼ ) [동아/ 2021-06-26] 벽시계가 떠난 자리 ― 박현수(1966∼ ) 벽시계를 벽에서 떼어놓았는데도 눈이 자꾸 벽으로 간다 벽시계가 풀어놓았던 째깍거림의 위치만 여기 어디쯤이란 듯 시간은 그을음만 남기고 못 자리는 주사바늘 자국처럼 남아 있다 벽은 한동안 환상통을 앓는다 벽시계에서 시계를 떼어내어도 눈은 아픈 데로 가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생명을 사랑한다. 반대로 생명 외의 ‘사물’에 대해서는 좀 차갑게 보는 경향이 있다. ‘사물화’라는 말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람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도구로 전락하면 우리는 ‘사물화’되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시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 시는 녹슨 깡통, 타고 남은 연탄재, 사금파리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