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바다와 나비 - 김기림(金起林·1908~?) [조선/ 2021.03.22] 바다와 나비 - 김기림(金起林·1908~?)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나비의 허리에 걸린 “새파란 초생달”이 산수화 한 폭 같다. 선명한 이미지, 절제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김기림이 일제강점기에 이처럼 우리말의 맛을 잘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시를 썼다. 처음 읽을 때는 귀엽고 앙증맞고 서글픈 공주의 시였다. “공주처럼 지쳐서”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철없이 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