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성만(聲聲慢),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 이청조(李淸照, 1084~1155)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쓸쓸하고 쓸쓸할 뿐이라
처량하고 암담하고 걱정스럽구나.
잠깐 따뜻하다 금방 추워지곤 하는 계절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가 없네(…)
온 땅에 노란 국화 쌓였는데
지독하게 말랐으니
이젠 누가 따 준단 말인가
창가를 지키고 서서
어두워지는 하늘 어떻게 홀로 마주할까
게다가 오동잎에 내리는 가랑비
황혼이 되어도 방울방울 그치지 않네.
이 광경을
어찌 시름 수(愁) 한 자로 마무리하랴
(류인 옮김)
중국 최고의 여성 시인이라는 이청조가 쓴 송사(宋词: 송나라의 문학 양식). 제목 앞에 붙은 ‘성성만(聲聲慢)’은 곡조 이름인데, 곡조명에 ‘만(慢)’이 붙으면 박자가 느린 곡에 맞추어 쓴 노래(가사)를 의미한다. 쓸쓸한 이별 노래는 박자가 빠른 곡에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본 송사들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첫 행.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처럼 편안하면서 독특하게 시작한 송사를 나는 알지 못한다. 여성이기에 격식에 덜 얽매였고, 그래서 이처럼 자유로운 구어체 표현을 쓰지 않았나.
이청조는 첫 남편과 사이가 아주 좋았는데, 그녀가 46세 때 남편이 병사하고 금나라 군대의 공격을 받아 고달픈 피란길을 떠난 뒤 시가 우울해진다. 오동잎에 내리는 가랑비를 보며 툭 던지듯 뱉은 마지막 행에 남편을 잃은 슬픔과 피란길의 고통이 배어 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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