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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아까운 가을 [문화/ 2023-11-08]

설지선 2023. 11. 8. 13:25

 

 

    처서 - 임유영

     

     

    아무도 아무에게도 왜 사냐고 묻지 않았어요 넌 얼마나 가졌니, 나무에게 물으니 가난한 나뭇잎이 쏴아아 요란하게 떠들어댑니다 웃음을 꾹 참으면 안 깨끗한 물이 눈에서 흘러나옵니다 이것이 파도의 성분입니다


    (임유영 시집 ‘오믈렛’)

 

 

아까운 가을

 

 

낙엽이 절정이다. 하나둘 떨어져 어느새 한가득한 낙엽을 두고 보다가, 마냥 그럴 수는 없어 빗자루를 들고 나선다. 한참 쓸고 있는데, 지나던 노인 한 분이 “아까우니 그냥 두어요” 하고 말을 건다. 농이겠거니 웃어넘겼는데, 노인이 떠나고 비질을 마친 뒤에도 나는 그 말을 반복해 떠올려보다가 마침내 궁금해지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저 낙엽이 다 돈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럼 나는 부자일 텐데. 그러나 낙엽은 돈이 아니고, 그러니 많아도 소용이 없고, 나는 여전히 가난하다. 그런 낙엽이 아깝다니. 바싹 마른 채 버려져 나뒹구는 낙엽이 어째서. 나는 노인에게 되물어보고 싶다. ‘선생님, 무엇이 아깝다는 뜻인가요. 쓸지 않으면 거리를 더럽히고 마는 저 낙엽의 효용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리 말씀하신 건가요.’ 혹시 아까운 것은 가을의 기분일까. 이 쓸쓸한 계절은 그리 길지 않다. 곧 빈 가지의 계절이 될 것이며 우리는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일에 정신이 팔릴 것이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고 걸으며, 그것이 새순이었다가 생생한 잎이었던 지난 시간의 우리를 추억하는 것도 지금에나 가능할 일. 그러니 일평생 맞이할 수 있는 몇 번 되지 않는 가을을 아껴보라는 충고일까.

그러자니 나는 어쩌지 못하는 낙엽이 아깝긴 하구나, 여기게 되는 것이었다. 가치로 따지자면 저것이 돈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어쩌면 돈보다 나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가 왜 부자가 되지 못하는지 알겠다 싶어져서 웃음도 나는 거였다. 그사이 창밖에는 언제 쓸었냐는 듯 낙엽이 도로 수북해져 있었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