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 - 김상혁
사람 정말 싫다. 내가 이런 말 하면 나의 다정한 사람은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름들 몇 개 들려주거나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손잡아준다.
시험에 든다는 말, 교회에서 자주 듣는 말. 가령 싫고 징그러운 것들 커다란 광주리 안에 하염없이 쏟아놓고 그 속 어딘가에 내가 미치는 물건 몇 개 숨겨두는 신의 기호(嗜好) 같은 것.
(김상혁 시집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는
‘서점의 일’에 낭만을 느끼는 이들은 “서점을 하신다니 좋겠어요” 하고 말을 건넨다. “어떤 점이 좋을 것 같아요?” 되물으면, “조용한 곳에서 종일 책 읽는 일이니까요”와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반면,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어렵겠어요.” 걱정해주는 현실적인 사람들도 있다. 역시 마땅한 대답을 찾기 어려워 얼버무리고 만다.
‘서점의 일’은 마냥 낭만적일 리 없으며,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있다. 그렇다고 낭만적인 부분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며, 책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인데, 그러하지 않은 일이 있겠는가. 무엇보다 각자의 좋음과 괴로움이 다 다를 터다. 그래도 ‘하나 콕 집어 보라’ 물으면 서점의 일에 있어 나의 기쁨과 슬픔은 모두 사람으로부터 비롯한다. 서점에는 상냥하고 다정한 독자들과 무례하고 불편한 독자들이 함께 찾아온다. 전자에 속한 이들 덕분에 지속할 힘을 얻는다. 후자에 속하는 이들 때문에 이제 그만 운영하고 싶어진다.
분명한 것은, 후자 때문에 전자를 잃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얻은 상처를 사람으로부터 치유 받는다고 할까. 그리고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아마도 각박한 세상이 그럼에도 살 만한 곳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가느다란 빛만 있어도 완전한 어둠은 불가능하지. 나는 오늘도 서점 문을 열어둔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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