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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수호-문화새나시/유희경♣시 : 선

[유희경의 시:선] 위로가 필요한 때 [문화/ 2023-02-15]

설지선 2023. 2. 15. 12:08

       

       

      취급이라면 - 김경미

       

       

      살아 있는 게 너무 재밌어서
      아직도 빗속을 걷고 작약꽃을 바라봅니다

      몇 년 만에 미장원엘 가서
      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 말한다는 게
      머리 좀 쓰다듬어 주세요, 말해 버렸는데

      왜 나 대신 미용사가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경미 시집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위로가 필요한 때

 

 

당분간 불황이라 하던데, 어김없이 서점을 찾는 발걸음이 뜸하다. 어쩔 수 없이 서글퍼진다. 7년 전 서점을 시작할 당시 나의 포부 중 하나는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을 위로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정작 서점지기인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궁상떨 일이 아니라 서점 문을 일찍 닫으라, 하는 충고도 듣는다. 그럼에도 늦도록 나는 시집을 찾아오는 이들을 기다린다. 이런 일이 있었다. 퇴근을 준비하던 늦은 밤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시집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추천을 해달라 했다. 늘 해오던 일이다. 질문을 몇 번 던져본 후 어울릴 만한 시집을 꺼내 건넸다. 시집을 받아 든 그는 한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감에 여념이 없던 내 귀에 홀짝홀짝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퍼뜩 고개를 들어보니 그가 울고 있었다.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놀라기도 했거니와 어쩔 줄 몰라서 우왕좌왕하다가 고작 갑 티슈를 그 앞으로 밀어놓는 게 다였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겠으나 초면에 무턱대고 그 이유를 물어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밤은 어두워지고 별말 없이 울던 그는 시집을 계산하고 돌아갔다. 그날 이후 늦도록 서점 문을 열어둔다.

그러고 보니 이 밤이 그 밤과 닮았다. 나는 예전의 그가 읽고 울던 시집을 꺼냈다. 이미 수차례 읽었으나 울어본 적은 없던 시집이다. 그런데 이번엔 나도 울 것 같다. 시집이 아니라, 이 조용한 시간이 나를 토닥여주는 것 같아서였다. [유희경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