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탁 - 배한봉(1962∼ )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는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잠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 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 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산에는 절이 있고, 절 안에는 목어가 있다. 커다란 나무 물고기가 산바람을 맞아 흔들리는 모양을 보면 의아할 수밖에 없다. 산에 무슨 물고기인가. 물고기와 부처는 무슨 관계인가. 오래된 물고기 전설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물고기처럼 눈을 감지 말고 정진하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이 목어가 작아지고 둥글게 변하면 우리가 아는 목탁이 된다. 그러니까 스님들이 두드리는 목탁이란 아주 먼 옛날, 먼 바다의 물고기로부터 왔다는 말이다.
이런 사정 때문일까. 목탁을 보면서 물고기를 떠올리는 우리 앞에 배한봉 시인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한 생각을 제시한다. 그는 물고기로부터 목탁이 아닌 ‘육탁’을 건져낸다. 새벽 어판장, 살아 있는 물고기들이 뭍에 나와 펄떡인다. 온몸으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 꼭 몸으로 치는 목탁 같다. 생의 가장 비참한 순간은 가장 괴로운 순간이고 가장 살고 싶은 순간이다. 그때에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죽을힘을 다해서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 시인은 물고기가 펄떡거리는 그 새벽을 활기찬 시장이라거나 용솟음치는 생명력이라고 표현하지 못한다. 바닥을 치는 온몸의 두드림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에서 물고기를 보았는데, 물고기만 보지 않았다. 시 안에는 비린내 대신 눈물 냄새, 사람 냄새, 진땀 냄새가 가득하다. ‘육탁’이라는 말을 오늘 처음 들었는데, 그것을 이미 좀 알고 보고 겪은 느낌이 든다. 남의 이야기인 듯하지만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이야기, 이것이 바로 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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