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초록 풀물 - 공재동(1949∼ ) [동아/ 2022-08-13]
초록 풀물 - 공재동(1949∼ )
풀밭에서
무심코
풀을 깔고 앉았다.
바지에
배인
초록 풀물
초록 풀물은
풀들의
피다.
빨아도 지지 않는
풀들의
아픔
오늘은
온종일
가슴이 아프다.
얼마 전만 해도 사람들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셨는지” 서로의 안부를 물었는데 지금은 좀 달라졌다. 코로나 대신 폭우에 “무탈하셨는지”를 묻는다. 서울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괜찮은지 전화가 오고 충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괜찮은가 전화를 건다. 그만큼 곳곳이 난리다.
한창 폭우가 내리던 때 나는 건물에 고립된 딸을 찾으러 길을 나섰는데 물은 점점 깊어져 허리까지 차올랐다. 두 팔을 들고 걸어야 할 정도였다. 사방은 위험하고 악취가 진동했다. 입었던 옷을 모아 빨래할 때에도 오수 냄새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신발이랑 옷은 세탁이라도 하는데, 가게와 집이 잠긴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사라진 생명은 어떻게 하고 남겨진 슬픔은 또 어쩌나. 쉽게 사라지지 않는 아픔 때문에 오늘의 시는 ‘초록 풀물’이다. 이 와중에 시가 읽히느냐 묻는다면 이건 시이기 전에 이미 우리의 심정이라고 대답하겠다.
제목이 ‘초록’이고 ‘풀물’이니 상큼하겠구나 싶지만 이 시는 퍽 아프다. 시인은 바지에 묻은 풀물이 사실은 피이고 또 아픔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건 빨아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풀물이 지워진다고 해서 아픔이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올여름에는 비가 올 때마다 조마조마하고 가슴이 아프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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