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와 할배 자세히보기

카테고리 없음

[오피니언]포럼 ‘군사’ 빠진 同盟은 동맹일 수 없다 - 이춘근 [문화/ 2020-09-08]

설지선 2020. 9. 12. 11:23

‘군사’ 빠진 同盟은 동맹일 수 없다 - 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문화/ 2020-09-08]


지난 2일 통일부 장관이 “한·미 관계가 어느 시점에서는 군사동맹과 냉전동맹을 탈피해 평화동맹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은 4일 “한·미 동맹은 안보 협력을 넘어선다”고 반박했다. 미국 측의 이같은 즉각적인 논평은, 현재 한·미 동맹의 건강 상태가 매우 불량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통일부 장관의 언급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수 없다. 우선, 장관이 사용한 개념들이 전혀 학술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제에 동맹이란 국제정치학적으로 무얼 의미하는지, 한·미 동맹이 왜 중요한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동맹이란 국제정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느 곳에든 있다. 국가의 힘을 증대시키는 가장 효과적이고 신속한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의 영역은 사자와 양이 사이좋게 노니는 낙원이 아니다. 힘 없는 나라는 왕왕 강대국에 나라를 빼앗긴다. 인간의 사회이니 힘 없이 살아남는 방법이 있긴 하다. 비굴하긴 하지만, 강한 나라에 조공 바치며 사는 것이다. 그러기 싫으면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나라는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일을 잘못한 결과 1910년 일본에 죽었고, 1950년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에 죽을 뻔했다. 1950년이 냉전시대가 아니었다면 미국은 한국을 살려 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고, 이후 한·미 동맹도 체결해 주지 않았을지 모른다. 1953년 당시 한국은 미국이 동맹을 체결해 줘야 할 만큼 소중한 상대는 아니었다. 세계적 지도자들이 ‘외교의 신’이라고 칭송할 정도로 탁월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력과 냉전시대라는 상황은 잘 결합됐고, 우리나라는 한·미 동맹이라는 막강한 안전장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은 지난 60여 년간 지구 최악의 국제정치 환경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세계 10위대의 경제력도 갖출 수 있게 됐다.

통일부 장관이 냉전동맹, 군사동맹, 평화동맹이란 개념을 무슨 뜻으로 사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국제정치상의 모든 동맹은 ‘군사동맹’이다. 군사 개념이 포함되지 않은 어떤 국제적 약속도 동맹이라 하지 않는다. 더 구체적으로, 동맹이란 ‘공통의 적(들)을 가진 둘 또는 그 이상의 나라가 그 공통의 적(들)에 군사적으로 함께 대항하자는 약속’이다.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들, 심지어 사이가 나쁜 나라들도 더욱 머리 아픈 공통의 적(敵)이 있을 때 동맹을 맺는다. 나치 독일, 군국 일본에 대항해서 미국과 소련이 동맹을 맺었던 것처럼. 물론 동맹은 진화한다. 소련이라는 대적을 거꾸러뜨리기 위해 대한민국처럼 약한 나라와 동맹을 맺었던 미국은 한국의 자유주의, 자본주의가 북한의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해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을 마치 자기네 일인 것처럼 좋아했다.

주한미군과 더불어 한·미 동맹의 양대 기둥인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2조는 ‘당사국 중 어느 일국의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 동맹이 작동된다고 규정하며, 적용 지역을 ‘태평양 지역(Pacific Area)’으로 한정했다. 지금 한반도 주변, 즉 태평양 지역의 국제 상황은 한·미 동맹이 체결되던 1953년보다 오히려 더 열악하다. 미·중 갈등은 미·소 갈등보다 격심하며, 북한은 핵무장까지 갖췄다. 한·미 군사동맹의 최종 목적은 한반도의 평화다. 국민의 90% 이상이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한·미 ‘군사 관계’를 대단히 소중한 것으로 믿고 있다. [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