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서너시의 산책 길에서 - 박형준
꽃은 무릎 같다
꽃 앞에 서면 마음이 어려진다
그리하여 나는 나른하기만 한
내 앞을 지나가는 다정한 노부부의
무릎 나온 바지를 찬양하게 된다
땅에서 올라오는 직선은
허공에서 구부려지기 위해
발에 힘을 주고 있다
허공이 무릎을 구부리면
비로소 꽃이 되는가
꽃 앞에서
시간은 주름이 된다
사람도 나비도 벌도
주름을 따라 추억을 한없이 주둥이로 빨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꽃 앞에서 시간을 다림질하여 편 이는 없다
약력 :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현대시학작품상, 소월시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춤’ ‘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