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와 할배 자세히보기

카테고리 없음

[새로나온 시] 오후 서너시의 산책 길에서 - 박형준 [문화/ 2020--7-09]

설지선 2020. 7. 9. 09:22





    오후 서너시의 산책 길에서 - 박형준


    꽃은 무릎 같다
    꽃 앞에 서면 마음이 어려진다
    그리하여 나는 나른하기만 한
    내 앞을 지나가는 다정한 노부부의
    무릎 나온 바지를 찬양하게 된다

    땅에서 올라오는 직선은
    허공에서 구부려지기 위해
    발에 힘을 주고 있다
    허공이 무릎을 구부리면
    비로소 꽃이 되는가

    꽃 앞에서
    시간은 주름이 된다
    사람도 나비도 벌도
    주름을 따라 추억을 한없이 주둥이로 빨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꽃 앞에서 시간을 다림질하여 편 이는 없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현대시학작품상, 소월시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춤’ ‘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