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 시가 깃든 삶] 독감 ― 박소란(1981~) [동아/ 2020-03-14]
독감 ― 박소란(1981∼)
죽은 엄마를 생각했어요
또다시 저는 울었어요 죄송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
어디야? 꿈속에서
응, 집이야, 수화기 저편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데
내가 모르는 거기 어딘가 엄마의 집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엄마의 집은 아프지 않겠구나
병원에는 가지 않았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
식후 삼십분 같은 말을 생각했어요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 사람을
마스크를 쓰기 위해 얼굴이 돋아난 사람을
오, 이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일어나주지 않았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 죄송해요
울먹이면서
멀쩡히 잘 살아갑니다, 실없는 꿈속에서
어디야?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
거기 먼 집
닫지 못한 문이 있고 여태
늦된 겨울을 건너다보고 있을 엄마, 감기 조심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들 한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자존감을 높이라고들 한다. 이 말은 정답 같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오답을 선택하곤 한다. 어떤 사람은 남을 위해 산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기도 한다. 이런 일에 거창하게 희생이라든가 위인이라는 말을 붙일 것도 없다. 평범한 나도, 평범한 너도 종종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예를 들어 보자. ‘이까짓 못난 인생 망쳐 버릴까. 확 죽어 버릴까’ 이런 생각이 들 때, 모진 마음이 약해지는 건 자신을 지극히 사랑해서가 아니다. 지금 내가 죽으면 엄마가 얼마나 슬퍼할까 걱정이 앞선다. 지금 내가 잘못되면 아이들이 얼마나 괴로워할까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서 정말 절망적일 때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엄마를 위해, 아이를 위해 일어서게 된다.
이 시에도 그런 사람이 나온다. 혼자서 앓는 한 사람이 서러워 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에게는 병원 갈 힘도 없고 약을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쓰러지고 싶은 저 인생을 잡아주는 건 ‘엄마 생각’ 하나뿐이다. 놀랍게도 엄마 생각은 식후 30분이 되고, 마스크가 되고, 약이 되어 혼곤히 쓰러진 저 사람을 지켜줄 것이다.
3월은 조금 아픈 달. 땅도 얼음이 풀리느라 몸살을 하고 환절기에 우리도 기침하는 달. 세상의 수많은 딸과 아들이 이 감기를 무사히 넘기기를 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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