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산수유나무의 농사 ― 문태준(1970∼ ) [동아/ 2018.4.7]
산수유나무의 농사 ― 문태준(1970∼ )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 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 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봄꽃이 핀다. 팡팡 소리를 내는 것처럼 경쾌하게 꽃이 핀다. 날이 흐려도, 비가 내려도 꽃봉오리는 부지런히 때를 찾아 핀다. 반자연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일이 잔뜩 일어나는 세상인 줄만 알았더니, 아직도 자연은 제 할 일을 해주고 있다니. 이런 섭리를 느끼는 순간에는 감사함이 깃든다. 겨울을 이겨낸 봄꽃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전해준다.
오늘 아침에 보니 매일 오고가는 길목에 선 나무도 노랗게 봄꽃을 달고 있다. 꽃을 보고서야 비로소 나무의 종류를 알게 되었다. 노랗고 자잘한 꽃을 피운 그 나무는 산수유나무였다. 바야흐로 이제 산수유 꽃 피는 계절이 돌아왔으니 문태준 시인의 이 시를 읽을 때가 되었다. 바로 ‘산수유나무의 농사’라는 시이다.
봄에는 ‘개나리 노란 꽃그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시를 보면 또 다른 노란 꽃그늘이 있음을 알게 된다. 시인은 산수유나무꽃을 일반인의 시선보다 훨씬 깊게 읽어낸다. 마치 땅의 농부처럼 산수유나무는 묵묵하고 성실하게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나무의 농사가 성공하면 그 덕은 우리들 사람이 받게 될 것이다. 곧 다가올 여름 한때 산수유나무 밑에서 땀을 식힐 한 사람을 위해 산수유나무는 일찍부터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자연의 섭리와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이라니. 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그야말로 딱 좋은 장면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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