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옛이야기 구절 ― 정지용(1902∼1950) [동아/ 2018-02-23]
옛이야기 구절 ― 정지용(1902∼1950)
집 떠나가 배운 노래를
집 찾아오는 밤
논둑 길에서 불렀노라.
나가서도 고달프고
돌아와서도 고달팠노라.
열네 살부터 나가서 고달팠노라.
나가서 얻어온 이야기를
닭이 울도록,
아버지께 이르노니-
기름불은 깜빡이며 듣고,
어머니는 눈에 눈물이 고이신 대로 듣고
이치대던 어린 누이 안긴 대로 잠들며 듣고
웃방 문설주에는 그 사람이 서서 듣고,
큰 독 안에 실린 슬픈 물같이
속살대는 이 시골 밤은
찾아온 동네사람들처럼 돌아서서 듣고
학교마다 졸업식이 많이 열리는 때다. 졸업식들이 끝나면 입학식의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졸업과 입학 사이에 놓인 사람들은 들뜨고, 약간 불안하고, 뭘 해야 할지 몰라 한다. 이들에게 2월과 3월 사이는 좀 특별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달력 어딘가에 ‘2월 하고도 2분의 1’이라는 달이 있는 느낌이다.
얼마 전, 강연을 가서 바로 이 ‘2월 하고도 2분의 1’의 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다. 강당에 모인 학생들 모두는 곧 고향을 떠나 서울로 유학 가는 학생들이었다. 그날 강연 끝에 사회자가 물었다. 20년 전에 고향을 떠난 당신은 이제 새 출발을 하려는 학생들에게 무슨 충고를 하겠느냐고. 충고할 자격이 없는 탓에 시만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정지용의 ‘옛이야기 구절’이다. 외우고 있었다면 학생들에게 읊어주고 왔을 텐데 아쉽다.
정지용은 어린 나이에 공부하러 집을 떠났다. 시를 보면 열네 살에 집을 나갔다고 되어 있다. 나가서도 고달팠고, 돌아와서도 고달팠다는 말이 가슴 아프다. 집 나간 어린아이는 지나치게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머니 행주치마 붙들고 집 마당에서 종종거리던 시절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어른인 척해야 하고, 다 자라지 못한 어깨를 펴야 했던 열네 살 어린이의 얼굴이 여태껏 안쓰럽다.
강연에서 내가 만난 학생들은 모두 열네 살 정지용이었다. 둘러보면 지금 열네 살 정지용인 사람들과 과거 열네 살 정지용이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고달프지 마라. 고달프지 마라. 집 떠난 모든 정지용들이 덜 고달픈 올해가 되길 바란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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