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보내 놓고 ― 황금찬(1918∼2017) [동아/ 2017-04-21]
보내 놓고 ― 황금찬(1918∼2017)
봄비 속에
너를 보낸다
쑥순도 파라니
비에 젖고
목매기 송아지가
울며 오는데
멀리 돌아간 산굽잇길
못 올 길처럼 슬픔이 일고
산비
구름 속에 조는 밤
길처럼 애달픈 꿈이 있었다.
황금찬 시인은 10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시를 썼던, 멋진 할아버지 시인이었다. 그는 항상 빵모자를 눌러쓰고 다녔고, 얼굴의 주름마저 다정해 보였다. 좋은 말, 고운 말, 남들에게 힘이 나는 말을 선사할 줄 아는, 정말 딱 우리네 할아버지 같았다. 그가 쓰는 시 역시 다정했다. 그의 작품에는 긍정의 말, 따뜻한 말, 축복하는 말, 신뢰하는 말이 듬뿍 들어 있다. 인간적인 서정을 노래하던 시인은 오랫동안 시단의 좋은 어른으로 지내 왔다. 그랬던 그가 올 4월 초에, 땅의 시인이기를 그만두고 하늘의 시인이 되러 떠났다. 이 소식을 듣고 맨 처음 떠오른 작품이 바로 ‘보내 놓고’이다.
이것은 봄의 시이며 또한 이별의 시이다. 어느 봄에 먹먹한 이별을 한 듯, 몽롱하고 애달픈 감정이 가득 담겨 있다. 시를 읽으면 마치 슬픈 꿈을 보는 듯하다. 사람이 슬픈 꿈을 꾸면 자면서도 울게 되고, 깨어나서도 이번 생이 꿈인지 저 꿈이 생인지 헷갈리면서 마음이 아련할 때가 있다. 눈가는 젖어 있고, 목 언저리도 축축한데 정신은 돌아와도 마음은 잘 돌아와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렇게 촉촉하게 젖은 마음을 시인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봄비’와 ‘송아지’, 그리고 ‘길’을 통해 표현했다. 눈물 대신 ‘봄비’가 내려 주었고, 시인 대신 ‘송아지’가 울어 주었고, 마음 대신 ‘길’이 그 사람을 따라가 주었다. 깨끗하고 맑게 그려진 슬픔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저 봄비 속에 서서 먼 길을 바라보는 이는 누구일까. 제각기 시의 한 구절에서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이는 모두 시 속의 인물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이 시를 읽으며 젊어서 이별하던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다른 이는 어려서 소몰이하던 고향 정경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혹은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애달픈 꿈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듯 봄에 떠난 시인의 봄 시를 읽자니 마음이 더욱 유정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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