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사랑 ― 양애경(1956∼ ) [동아/ 2016-10-14]
사랑 ― 양애경(1956∼ )
둘이 같이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문득 정신 차려 보니
혼자 걷고 있습니다
어느 골목에서 다시 만나지겠지
앞으로 더 걷다가
갈증이 나서
목을 축일만한 가게라도 만나지겠지
앞으로 더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참 많이도 왔습니다
인연은 끝나고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온 길을 되짚어 걸어가야 합니다
많이 왔을수록
혼자 돌아가는 길이 멉니다.
이 시의 제목은 ‘사랑’이지만 본문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시를 읽으면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사랑에 대한 시가 맞다.
시인이 말하기를 사랑이란 둘이 함께 걸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와는 반대로, 둘이 걷다가 어느새 혼자 걸어가게 되는 것을 일러 우리는 ‘이별’이라고 부른다. 사랑과 이별을 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의 일로 바꾸니 그 뜻이 참으로 잔잔하다. 잔잔함 속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별 또한 사랑의 일부라는 이 시의 메시지에 있다. 헤어진다고 해서, 이 길을 혼자 걷는다고 해서 사랑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사랑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 시의 화자는 혼자 걷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지 몰라서 사랑의 길을 쉽게 이탈할 수 없었다. 이렇게 사랑의 여운을 혼자 걷는 것도 ‘사랑’이다. 또한 다시 만날 수 없대도 사랑은 쉽게 끝나지지 않는다. 사랑하면서 걸었던 길을 왔던 만큼 되짚어 가야만 사랑은 비로소 끝이 날 수 있다. 그러니까 외롭게 돌아가는 마음의 복귀까지도 ‘사랑’이다.
세상에는 이별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성급해지지 말 것을, 이 시는 당부한다. 헤어지면 둘이 같이 만든 길을 혼자서 지워야 하니까 당연히 힘이 든다. 힘이 들면 원망이 생겨 난폭해지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까지 사랑의 일부라고, 이 시는 이야기한다. 사랑은 소중한 것, 그렇다면 예의를 갖추어 가는 길까지 정중하게 배웅해 주어야 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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