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아름다운 얘기를 하자 ― 노천명(1912∼1957) [동아/ 2016-08-26]
아름다운 얘기를 하자 ― 노천명(1912∼1957)
아름다운 얘기를 좀 하자
별이 자꾸 우리를 보지 않느냐
닷돈짜리 왜떡을 사먹을 제도
살구꽃이 환한 마을에서 우리는 정답게 지냈다
성황당 고개를 넘으면서도
우리 서로 의지하면 든든했다
하필 옛날이 그리울 것이냐만
늬 안에도 내 속에도 시방은
귀신이 뿔을 돋쳤기에
병든 너는 내 그림자
미운 네 꼴은 또 하나의 나
별이 자꾸 우리를 보지 않느냐
아름다운 얘기를 좀 하자
남자들만 사회생활을 하던 시대에 노천명은 태어났다. 여자이면서 시인이던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노천명은, 드문 경우니까 기억된다고 말하기에는 좀 아까운 사람이다. 그녀에게는 볼수록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지방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자랐고 서울의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시골의 분위기와 서울의 세련됨이 공존하고 있다. 또한 노천명 시인은 스스로를 굉장히 못난 사람이면서 고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결핍과 자기애가 공존한다. 이렇게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그의 시집에는 알려지지 않은 좋은 시가 많다. 여기 실린 시도 그런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시에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때 두 사람은 정다운 동무였다. 간식을 사면 나눠 먹었고, 무서운 시간도 함께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사연인지 지금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게 되었다.
이 둘의 싸움은 필요하고 정당한 싸움이 아니라, 서로가 미워서 벌어지는 싸움이었다. 미움은 사람보다 힘이 세서 두 사람의 마음은 병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정다웠던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부끄럽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다정한 동무를 붙들고 하소연한다. 이제 아름다운 얘기를 좀 하자고 말이다.
지금 읽는 이 시는 한 명의 동무를 넘어서 분쟁과 내전과 싸움과 미움이 가득한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 같다. 수억만 년 전부터 빛나는 별들이 보고 있는데 부끄럽지 않으냐고, 별 같은 눈동자와 마음이 보고 있는데 부끄럽지 않으냐고 말이다. 세상이 아름다운 이야기만 할 수 있고, 또한 해도 되는 세상이길 노천명 시인은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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