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아내 / 김광섭(1905∼1977) [동아/ 2016-03-25]
아내 ― 김광섭(1905∼1977)
손이 제일 더럽다면서
씻고 들어가
방 한 구석을 지키며
한 집을 세워 나가던 사람
늦이삭이지만 막 주우려는데
인술의 칼끝에 숨통이 찔렸던가
눈 뜨고 마지막 한 마디 없이 가니
보이는 데마다 비고
눈물이 고여
이 봄 다하도록
꽃 한 송이 못 봤네.
시인 김광섭 하면 ‘성북동 비둘기’가 떠오른다. 그가 성북동 비둘기의 벗이 되었던 시기는 몸이 몹시 아플 때였다. 그는 1960년대에 한 야구 경기를 구경하러 갔다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는데, 그 이후 반신불수가 되어 한동안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런 어려운 때에 ‘성북동 비둘기’가 찾아왔던 것이다. 이렇듯 아프고 힘들 때 시인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내의 내조가 한몫했다. 마치 두 마리 비둘기처럼, 노년의 부부에게는 오순도순 사는 일만이 남은 듯했으리라.
그러나 1969년 ‘성북동 비둘기’를 출간하고 나서 얼마 후, 그의 아내는 갑자기 발병하여 세상을 떴다. 겨우 열네 살에 만나 맺은 평생의 연인이요 운명이었다. 함께 월남했고, 함께 아이를 키웠고, 함께 늙었던 인연이었다. 시인의 70 평생에서 그와 함께하지 않은 날이 더 적었다. 그런 아내를 잃고 나서 노년의 시인은 세상마저 싫어졌다고 썼다. 그 마음으로 쓴 시가 바로 ‘아내’라는 작품이다.
신문사 기자, 대통령 공보관으로 바빴던 젊은 시절에도 아내는 집안을 든든히 지켜주던 우군이었다. 집이 곧 아내이고 아내가 곧 집이었는데 돌아갈 집이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아내를 잃은 노인이 따로 할 일이 있을까. 그의 절절한 심정이 마지막 연에 가득하여 심금을 울린다. 시인은 말한다. 세상에 한 사람이 비었는데 세상이 온통 비어버린 듯하고, 세상에 꽃이 가득 피었는데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고 말이다. 한 사람의 의미란 것이 이렇듯 중대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듯 크다. 시인에 의하면, 한 사람의 가치란 세상보다도 봄보다도 더 크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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