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서녘 [동아/ 2015-10-23]
서녘 ―김남조(1927∼)
사람아
아무러면 어때
땅 위에
그림자 눕듯이
그림자 위에 바람 엎디듯이
바람 위에 검은 강
밤이면 어때
안보이면 어때
바다 밑 더 파이고
물이 한참 불어난들
하늘 위 그 하늘에
기러기떼 끼럭끼럭 날아가거나
혹여는 날아옴이
안 보이면 어때
이별이면 어때
해와 달이 따로 가면 어때
못 만나면 어때
한가지
서녘으로
서녘으로
감기는 걸
2015년 10월 21일 클래식 음악 채널들은 하나같이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떤 연주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유튜브에 가면 실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연주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마음을 흔들 정도로 웅장하고 애상적인 작품이다. 사실 웅장이라는 특징과 애상이라는 성격이 공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웅장이란 거대한 것이고, 애상이란 미묘함의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웅장과 애상이 제대로 만나면 우리의 마음을 아주 먼 곳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 마치 상냥한 거인처럼, 아주 센 힘으로 우리의 영혼을 들어 우주적인 차원으로 쏘아 올린다.
조성진의 쇼팽 연주를 들을 때 떠오르는 우리 시 역시 웅장하고 애상적인, 상냥한 거인의 것이다. 김남조 시인은 많은 시인들에게 정신적 지주와 같은 시인이어서 상냥한 거인이라고 부르기에 어색하지 않다. 그가 10번째 시집에 수록한 ‘서녘’이라는 작품은 사람의 만남과 이별, 삶과 사랑과 죽음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아우르고 있다. 이 시는 ‘아무거나 뭐 어때’같이, 무심한 어조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시에서의 ‘어때’ 부분은 꾹꾹 참아가면서 읽어야 한다. 어둠과 아픔을 ‘어때’로 표현한다는 것은 고통에 무감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언젠가는 함께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별의 아픔에 이 시만큼 위로가 될 시도 없다. 이 시는 말하고 있다. 힘든 어둠의 터널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웃는 너와 손을 맞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나민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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