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무지개를 사랑한 걸 [동아/ 2015-09-25]
무지개를 사랑한 걸 ― 허영자(1938∼)
무지개를 사랑한 걸
후회하지 말자
풀잎에 맺힌 이슬
땅바닥을 기는 개미
그런 미물을 사랑한 걸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 덧없음
그 사소함
그 하잘 것 없음이
그때 사랑하던 때에
순금보다 값지고
영원보다 길었던 걸 새겨두자
눈멀었던 그 시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기쁨이며 어여쁨이었던 걸
길이길이 마음에 새겨두자.
고향에 간다. 이것은 가족 친지를 만난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있다. 고향에 가는 것은 일종의 ‘돌아감’이다. 그곳에는 지금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나, 즉 과거의 내 모습이 여운처럼 남아 살고 있다. 그러니까 고향에 가는 일을 비유하자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과거 어린이로서의 본인이 뛰어놀던 장소들을 보게 되면 그때의 장면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고, 그때의 어린 자신이 마음 안에서 살아나는 듯하다. 사람들은 이런 기억이나 현상을 ‘추억’이라고 부른다. 고향은 대개 어린 추억이 층층이 쌓인 곳이어서 우리로 하여금 과거로 돌아가는 깊은 경험을 하게 만든다.
허영자 시인의 작품은 고향에 가지 않아도 유년의 추억과 눈부심을 만나게 해준다. 게다가 이 시인의 작품은 과거의 어린 추억이 지닌 가치를 ‘무지개를 사랑한 일’이라고 표현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준다. 시인의 표현을 따라서 쪼그리고 앉아 풀잎에 맺힌 이슬을 한참 바라보는 아이, 개미를 신기하게 관찰하는 아이를 떠올려 보자. 어른의 눈에는 별 가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미물들을 사랑했던 그 행동들은 참으로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인은 바로 그 순수한 기쁨이야말로 너무나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작은 것에도 눈을 반짝이던 그 시절은 이미 무지개처럼 사라졌다. 그렇지만 이 시를 보면서 순수한 어린 시절이 무지개처럼 아름다웠음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 [나민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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