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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아침(14)]걸레 - 구광렬 [경상/ 130904]

설지선 2014. 10. 15. 14:13

[시를 읽는 아침(14)][시를 읽는 아침(14)]걸레 - 구광렬 [경상/ 130904]



걸레 - 구광렬


지금은 부도가 난 모 중소기업 창립기념품으로 받은 수건. 얼핏 툇마루에 뭉쳐져 있는 그 모양새,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뒤 곤해하는 예수 같다 터진 실밥뭉치는 움푹 들어간 눈, 희미해진 ‘축 창립 10주년… …’은 더부룩 턱수염

빨려고 집어 드니 안쓰럽다 잡범들과 나란히 십자가에 못 박혔던 神. 제 손으로 못 하나 제대로 못 빼던 神. 부활해야하나 한 오백 년 푹 쉬고 싶은, 발등에 고비의 황사가 쌓이어도 다시는 제자들 발을 씻겨주지 않을
하지만 천생 예수, 두드릴 문도 없이 사시는 칠곡 황토초가의 외당숙 같은, 굳은 일 도맡아 젖은 손 마를 길 없는 머슴출신의




오래된 수건은 때때로 걸레로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이제 별 볼일 없이 걸레가 된 낡은 수건을 화자는 예수에 대입시키고 있다.

우선 모양새를 보면 ‘터진 실밥 뭉치는 움푹 들어간 눈’ 이나 ‘칠곡 황토초가의 외당숙’ 같다. 하지만 생김새만으론 온전히 예수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걸레의 기능과 특징을 더 추가해, 가장 낮은 곳에서 무기력하고 굴욕 같은 삶과 ‘젖은 손이 마를 길 없는’ 희생적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실 여느 시에서 보듯 시의 의인화 기법은 실패할 확률이 많다. 하지만 이 시는 그 실패를 넘어 상당히 재미있고 뭉클하다. 그 이유는 의인화의 속성인 과장과 동화적 치기를 허물고, 사물을 바라보는 따스한 경험과 해학적 리얼리티에 절묘하게 기대어져 있기 때문이다. [권주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