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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점 / 김선우

설지선 2013. 11. 26. 11:21

[시가 있는 아침] 점 [중앙/ 2013.11.26]   

 

    

점 - 김선우(1970∼ )

 

 



나는 지금 애인의 왼쪽 엉덩이에 나 있는

푸른 점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오래 전 내가 당신이었을 때

이 푸른 반점은 내 왼쪽 가슴 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구과학 시간 칠판에 점 하나 쾅, 찍은 선생님이

이것이 우리 은하계다! 하시던 날

솟증이 솟아, 종일토록 꽃밭을 헤맨 기억이 납니다

한 세계를 품고 이곳까지 건너온 고단한 당신,

당신의 푸른 점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갑니다

푸른 점 속에 까마득한 시간을 날아

다시 하나의 푸른 별을 찾아낸

내 심장이 만년설 위에 얹힙니다

들어오세요 당신, 광대하고도 겨자씨 같은,

당신이 내 속으로 들어올 때 나, 시시로 사나워지는 것은

불 붙은 뼈가 물소리를 내며

자꾸만 몸 밖으로 흘러나오려 하는 것은

푸른 별 깎아지른 벼랑 끝에서

당신과 내가 풀씨 하나로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이런 대사 숱하게 날렸을 겁니다. 또다시 사랑에 빠지다니, 내가 미친년이야 하다가 또다시 사랑이 깨지다니, 네가 미친놈이야 하는 거. 그런데 있죠, 볼따구니 한복판에 붙어 누구라도 떼어줄 팥알 같은 자줏빛 점 같은 거 말고요, 내 겨드랑이 안쪽에 붙어 깨진 깨알처럼 희끄무레하게 번진 점 같은 걸 콕 집어 그 생김으로부터 나의 기원부터 되짚어주는 사람은 몇이나 됐던가요. 아침부터 뭔 점 타령이냐고들 하시겠지만 내가 가진 장점, 단점 온갖 점들을 몰라봐주는 이가 사랑일 리는 없다 싶어서요. 그렇다고 돋보기 들이대는 사람, 귀지부터 파주고 볼 일이고요.<김민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