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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시] 눈의 무게 - 송재학 (조선/ 130204)

설지선 2013. 2. 4. 03:45

눈의 무게 ― 송재학(1955~ )


느티나무 가지에 앉은 눈의 무게는 나무가 가진 갓맑음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느티나무가 입은 저 흰옷이야말로 나무의 영혼이다

밤새 느티나무에 앉은 눈은 저음부를 담당한 악기이다 그때 잠깐 햇빛이 따뜻하다면 도레미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도 보일 게다


햇빛 속에 내놓은 상감청자 같은 시다. 겨울의 느티나무를 올려다보면 수많은 잔가지로 자글자글 하늘을 금가게 하지 않던가. 청정(淸淨) 하늘에 새겨진 상감기법의 가지들 말이다.

느티나무는 밑둥치는 대단해도 그 끝은 성냥개비보다 얇은 가지들이 수없이 얽혀서 펼쳐져 있다. 그러니까 여간 조용하지 않으면 거기에 눈은 앉을 수가 없다. 소복하게 느티나무 가지에 눈이 쌓였다는 것은 전날 밤 꿈이 사납지 않았다는 것!

느티의 '갓맑음'의 영혼을 보기가 어디 쉽던가. 더불어 그 아래를 지나갈 때도 고요히 조심해야 그 영혼이 쏟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저음부의 악기가 되는 셈이다. 다만 햇빛이 나면 눈 녹은 물이 떨어지며 대지의 건반을 누를 것이다. 그 빛나는 긴 손가락들 곁에 서 있고 싶다. [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