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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시] 길 / 류근 (조선/ 130130)

설지선 2013. 1. 30. 09:22

― 류근(1966~ )




여섯 살 눈 내린 아침


개울가에서 죽은 채 발견된 늙은 개 한 마리


얼음장 앞에 공손히 귀를 베고 누워


지상에 내리는 마지막 소리를 견뎠을


저문 눈빛의 멀고 고요한 허공


사나흘 꿈쩍도 않고


물 한 모금 축이지 않고 혼자 앓다가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개울가로 걸어간

 

개 발자국의 선명한 궤적이


지금껏 내 기억의 눈밭에 길을 새긴다




여섯 살 어린 아이가 개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개는 사나흘 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앓았는데 눈 온 아침 마당에 발자국을 내면서 어디론가 사라졌으니 궁금했던 것이다. 아이가 발견한 건 개울가에서 죽은 늙은 개였다. 아이에게 그것은 큰 질문으로 다가온다. 개는 왜 그랬을까? '지상에 내리는 마지막 소리를 견뎠을/ 저문 눈빛의 멀고 고요한 허공'을 체험해 본다. 눈이 내린 것과 개가 집을 나선 것은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 눈 오는 고요의 소리가 좋아서 그 소리를 따라가고 싶었던 영혼이었을까? 마지막으로 보았을 눈 내리는 '멀고 고요한 허공'은 과연 그 개의 영혼이 흘러갈 만하게 다정한 손짓이 되어 주었을까? 옛말에 개는 집주인에게 제 험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죽음을 앞두고는 집을 나간다고 한다. 키우던 개의 죽음은 한 어린 영혼에게 슬픔도 주었겠지만 고귀한 숙제를 주었다. 그 숙제는 일생 함부로 가는 욕망을 제어하고 멀리 보도록 하는 아름다운 역할을 할 것이다. [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